우리나라 전기요금은 ?i당 평균 83.59원이다. 일본 202.30원,영국 184.39원,미국 115.48원보다 현저하게 낮다. 주택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7.8%,산업용은 54.6% 수준이다. 이렇게 싸니까 전기를 그야말로 펑펑 써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이 OECD 평균의 1.7배에 이를 정도다. 일본(OECD 평균의 61%)은 물론 미국(106%) 보다도 훨씬 많이 쓰고 있다.

전기료가 싼 것 자체는 시비 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가보다 낮게 공급하면서 수급 구조를 왜곡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딱 그런 꼴이다. 생산원가 대비 전기요금을 뜻하는 원가 보상률은 86.1%에 지나지 않는다. 주택용 94.2%,일반용 96.3%,산업용 89.4%다. 농사용은 원가의 36.7%에 불과하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한국전력 적자가 확대되고,이를 세금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료가 싼 데는 우리 원자력 발전 비중이 32% 정도로 높은 게 한 요인이란 분석도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한전에 파는 전기의 단가는 ?i당 39원,석탄발전소는 51원(2009년 원자력발전백서)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당장은 원가가 싸게 먹히지만 요금에 반영되지 않은 비용이 쌓여간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노후 원전 해체철거비 등이다. 그 비용을 나중에 수요자가 떠안아야 한다.

싼 전기료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석유나 가스 대신 전기를 쓰는 비효율적 대체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방에는 전기매트,사무실엔 온풍기,식당엔 전기히터,책상 밑엔 전기난로를 갖다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채소 화훼 축사 양식어업에서도 주로 전기를 쓴다. 항만의 컨테이너 크레인이나 주물공장의 동력도 과거 석탄 · 경유에서 대부분 전기로 바뀌었다. 가스 난방을 시스템 에어컨으로 교체하는 학교도 크게 늘어났다. 이렇다 보니 2001년 이후 10년간 등유 소비는 반 이하로 줄어든 반면 전력소비는 68%나 급증했다. 다른 연료를 사용해도 되는 수요가 생산비가 많이 드는 전기로 대거 옮겨간 것이다.

정부가 내달부터 전기료를 평균 4.9% 올린다고 26일 발표했다. 전기료를 현실화한다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절약 효과를 얼마나 낼지는 알 수 없다. 자영업자용 저압요금을 2.3%로 소폭 인상해 저소득층 부담을 줄인 것은 그렇다 쳐도 대기업용 고압요금을 6.3%나 올린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원가 줄이기가 체질화된 대기업들이 요금을 올린다고 절약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만 높아졌다. 그보다는 전기 과소비를 억제하고,효율 높은 1차 에너지를 많이 쓰도록 유도하는 '똑똑한 요금체계'를 만드는 데 더 주력했어야 했다.

전기료 현실화는 당면 과제지만 물가와 정치권 입김에 밀려 번번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국민연금,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대처가 어렵고 후에 누군가가 짐을 떠안게 되는 건 물론이다. 이번에도 당초 7%인상안이 나왔다가 4.9%로 조정됐다고 한다. 게다가 내년 총선 대선까지 앞두고 있다. 값싼 전기료에 길들여지면 나중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전기요금 포퓰리즘에서 언제나 벗어나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