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은 이미 예고된 사안으로 관건은 시기와 인상률이었다. 정부가 내달 1일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여름철 전기 사용량이 통상 8월 둘째주에 정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상률은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의 협상(?)을 통해 도출됐다. 지경부는 지난 5월 7.6%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재정부는 4.8% 수준을 고집해왔다. 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 속도가 심상찮다고 느낀 지경부가 대폭 양보해 재정부 안을 거의 수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4인 가족,월 800원 더 부담

인상률 4.9%라는 수치는 주택용 산업용 일반용 요금 인상률의 평균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가정용은 올해 물가상승률 4%의 절반인 2% 상승에 그쳤다. 도시에 사는 4인 가구가 한 달 평균 4만원의 전기요금(월 312㎾h 사용 기준)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상으로 800원을 더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최근 집중호우 등의 피해를 입은 농어민을 위해 농사용 요금은 동결했다. 반면 공장 가동에 쓰이는 산업용과 골프장,스키장,일반 상업용 건물 등에 들어가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많이 올랐다.

다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를 배려해 산업용에서도 대기업이 주로 쓰는 고압요금은 6.3%,중소기업용 저압요금은 2.3%로 인상률이 차등 적용됐다. 대 · 중소기업 구분 없이 본다면 산업계는 월평균 전기료가 기존 468만원에서 28만6000원 더 늘어난다. 일반용 중에서도 백화점 등 대형 건물용 고압요금은 6.3% 오르는 반면,영세 자영업자용 저압요금은 2.3%로 소폭 상향 조정됐다.

산업용을 중심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요금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 압력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지경부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소비자물가는 연 0.038%포인트,생산자물가는 연 0.12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후방효과가 큰 전기요금의 특성상 실제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취약계층 월 8000원'정액 할인'

지경부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지원 대책을 동시에 내놨다. 우선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최고 21.6%까지 요금을 깎아주던 '정률제' 할인 방식을 무조건 8000원씩 할인해주는 '정액제'로 전환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의 월평균 할인 금액은 21.6% 기준으로 5230원이다.

차상위계층도 한 달 평균 616원(2% 기준) 할인받던 것에서 월 2000원 정액할인제로 혜택이 확대된다. 지경부는 정액제 대상자가 기준 금액보다 전기를 적게 사용할 땐 차액분만큼 현금 또는 쿠폰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재원 부담을 덜기 위해 기존 3자녀가구,대가족 등에 적용해 오던 할인제도는 유지는 하되 최대 할인 한도를 월 1만2000원으로 제한했다. 또 고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노인복지주택,유료 양로시설 등은 요금 할인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원가회수율엔 여전히 못 미쳐

전기요금을 4.9% 인상해도 여전히 원가회수율엔 못 미친다. 원가회수율이란 전기 생산을 위한 원가 대비 수익 비율을 뜻한다. 바뀌기 전 요금체계에서 원가회수율은 86.1%였다. 하지만 이번 인상안으로 예상되는 원가회수율은 90.3%로 100%엔 못 미친다. 실제 2006년 이후 원가보상률 100%에 필요한 인상률만큼 전기요금이 올랐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다만 정부는 추가적인 인상에 대한 여지를 남겨놨다. 이번엔 물가 때문에 인상폭을 양보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원칙에 따라 용도별로 나눠진 전기요금체계를 단일화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한다는 방침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