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사꾼의 피, 서비스 DNA 복원하자
우리나라 식당은 서비스 천국이다. 우선 물이 공짜다. 휴지는 물론 물수건도 나오고 반찬도 더 준다. 후식으로 커피나 과일을 또 내놓는다. 잔반을 산더미처럼 쌓아도 관계없다. 비치해 놓은 이쑤시개를 물고 나오면 주차장 안내원이 자동차 키를 내준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봉사'를 서비스라고 한다면,우리나라 음식점에선 서비스가 넘칠 대로 넘친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은 영세하다. 일자리의 70%, 국내총생산(GDP)의 60%가 서비스산업이지만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이다. 대표적인 예가 음식점이다. 전국의 음식점이 60만개가 넘는다. 식당 한 개가 평균 80명의 고객을 상대로 한다. 그러자니 가격을 낮추고 질 낮은 서비스에 목숨을 거는 과당경쟁이 판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언제나 불경기다.

영세하고 빈약한 이유는 또 있다. 병원장은 의사만이 할 수 있다. 약국은 약사, 미용실은 미용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이들 서비스업은 업장에 면허장을 걸어놔야 한다. 면허장은 한 장밖에 없으니 지점도 만들 수 없다. 애당초 대형화 체인화가 불가능하게 돼있다.

제조산업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고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도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공장에서 쓰는 전기나 수돗물은 요금이 할인되는 데 반해 서비스업에서 쓰면 일반가정용 요금을 내야 한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부가가치율도 높다. 투자세액 공제 같은 것도 거의 없다.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대학 진학률 82%의 나라이긴 하지만, 서비스산업에선 특히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인력개발은커녕 대학 졸업 때까지 서비스에 대한 기초교육조차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들어간 신입사원이 '오줌 누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정도다.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것을 '알바'정도로 여기는 풍토에서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나무 아래서 물고기를 찾는 경우다.

너도나도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를 얘기한다. 우리의 서비스산업이 이렇게 형편없기에 하는 말일 게다. 동시에 서비스산업에서 살 길을 찾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제조업만으로는 힘들다.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4%를 밑도는 잠재성장률로는 지속적 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기계가 사람 대신 일하는 쪽으로 가는 제조업에 매달려 갖고는 일자리 창출 능력도 떨어진다.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는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조선의 나약한 관념주의 지배층이 만들어 놓은 사농공상(士農工商) 논리에서 벗어난다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에겐 서비스로 무장된 장사꾼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장보고와 왕건은 전설이 아니다. 역사적 멘토인 개성상인도 있다.

정조는 수원에 시장을 만들었다. 지금의 팔달문시장이다. 왕이 시장을 개설한 나라에서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명궁의 화살은 과녁을 빗나가지 않는 법,21세기 서비스산업은 우리 것이다.

서비스는 고귀한 가치다. 영어로 병역의무를 military service,예배도 service라고 한다. 서비스산업도 그렇다. '올가미 없는 개장사'가 아니다. 천하지도 않다. 제조업이 선(善)이라면 서비스업도 선이다. 악(惡)이 아니다. 규제할 필요도 없고 차별할 이유도 없다.

경제성장에서 기적을 이룬 나라가 또 한 번 기적을 일궈내려면 서비스산업을 떠받들어야 한다. 그러면 일자리 수십만개쯤은 쉽게 만들 수 있다. 연간 800만명 남짓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배(倍) 이상 늘릴 수 있다. 서비스부문 만년 국제수지 적자도 해결할 수 있다.

국민소득 3만달러도 먼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흐르는 장사꾼 피와,우리가 갖고 있는 서비스 유전자(DNA)를 서비스산업에서 복원한다면 말이다. 서비스는 장사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요,서비스는 산업의 시작이 아니라 마침표다.

류화선 < 전 파주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