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내놓은 '대안주유소' 도입 방안에 대해 정유업계에선 실현 가능성도 없이 시장질서만 망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휘발유 유통업을 하겠다는 반(反)시장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석유 수입해 파는 모델 실패"

한국석유공사가 싱가포르 등 국제시장에서 석유제품을 대량 구매해 국내에 공급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정유업계 의견이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이후 국내 휘발유 시장을 잠식하며 주목받았던 타이거오일 등 수입사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 것이 이를 방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국제 원유가가 급등한 시기에 국제 제품값이 국내 판매값보다 크게 낮아 수입 업체들이 이익을 많이 낸 적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국내 기름값 산정 기준이 원유가에서 국제 제품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뀐 뒤 그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이 기름을 수출해 이익을 내는 것은 국제값보다 경쟁력이 있기때문"이라며 "석유공사가 국내 값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서 제품을 도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2년 전체 휘발유 시장의 6.5%,등유와 경유를 포함한 경질유 시장의 7.9%까지 차지했던 수입사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올 상반기 0.7%와 2.2%까지 떨어졌다.

석유 수입을 위해 환경 기준을 낮추겠다는 대책도 문제로 꼽혔다. 정유사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은 높은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탈황시설 등 수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해왔다"며 "저질의 해외 제품을 들여오기 위해 기준을 낮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전체 주유소의 10%까지 대안주유소를 늘리겠다는 계획도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5월 말 전국의 주유소 숫자는 1만3296개로 적정 수준인 8500개를 크게 웃돈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며 문을 닫는 주유소가 늘어나는 마당에 정부가 나서서 더 싸게 파는 주유소를 만들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세금 쓰며 기름값 낮추나"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보조금을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도마에 올랐다. 국민 세금으로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보는 사업장에 지원하겠다는 발상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노인과 주부 등 유휴인력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방안도 과거 정책의 되풀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업계에선 "예전에 셀프주유소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다가 일자리 문제 때문에 접은 적이 있다"며 "지금도 대부분 주유소에서 최대한 인건비를 짜내고 있는 데 뭘 더 어떻게 줄이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터졌다.

대형마트 주유소를 특별시,광역시에서 인구 50만명 이상의 도시로 확대하는 방안도 2008년 추진했던 대책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ℓ당 100원가량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인하 효과가 미치는 지역이 제한적인 데다 근처 소규모 주유소의 영업환경이 악화된다는 반발 탓에 추가 확대는 벽에 부딪혔다. 일각에선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역행하는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ℓ당 70원을 내릴 수 있다는 정부의 셈법을 놓고도 이견이 많다. 정유업계에선 "현행 유류세 체계 아래에서 70원은 정유사와 대리점,주유소 등 모든 유통단계의 마진을 모두 합한 수치"라며 "결국 보조금으로 이를 맞추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