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납품가 인하가 결국 범죄로 규정될 모양이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26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없애겠다며 '대규모 소매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의 골자는 납품업체에 대한 상품대금 감액,반품,상품권 구입 강요, 보복조치 등 8개 행위를 불공정 행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시정조치와 과징금을 부과하는 외에 악질적인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이 이 같은 법안을 만들기로 합의한 데는 납품가 인하요구는 곧 후려치기요, 악이며 범죄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을 것이다.

백화점 등 일부 대형 유통업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업자 혹은 입점업체들을 가혹하게 다룬다는 것은 물론 어제 오늘의 논란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납품단가를 낮추려는 기업의 노력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원가를 낮추려는 노력은 너무도 당연하며 경영활동 중에서도 기본적인 행위다.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기업이 바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며 그 결과가 바로 소비자잉여다. 이는 제조업에서도 다를 게 없다.

납품가 인하가 거래기업과의 계약 사항을 명백히 위반해 위법 부당하게 이뤄졌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반강제적 가격 후려치기 역시 시정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조차 사법절차를 통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일률적으로 규제할 일은 아니다. 형사처벌 기준으로 제시한 '경쟁제한적 요소가 강하거나 악질적인 경우'도 너무 추상적이어서 당국의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최근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원가장부를 들추거나 아예 국영주유소를 세우겠다고 나섰던 정부다. 이 정부가 이번에는 유통업체들이 납품가격을 깎으면 형사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기름값은 비싸면 안되고 백화점 등에서 파는 물건은 거꾸로 싸면 안된다는 정부의 정신분열적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