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과학캠프 봉사활동을 마친 뒤 펜션 2층에서 잠을 자던 중 '으르릉'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계단이 모두 흙에 잠겨 있고 친구들은 이미…."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인하대 학생 이모씨(27)는 산사태 당시의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상천초등학교 정세이 학생(4학년 · 10)은 "언니,오빠들이 내일(28일) 물로켓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라며 울먹거렸다.

27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소양강댐 인근.산사태로 이날 새벽 인하대생 10명 등 13명의 꽃다운 삶을 앗아간 매몰사고 현장은 산에서 내려온 토사로 아수라장이었다. 수마가 덮친 펜션 건물은 휴지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나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중상자도 25명에 달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천전리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춘천펜션' 1층에 20명,2층에는 15명이 투숙해 있었고,길 건너편 '춘천여행펜션'에도 8명이 투숙하고 있었다. 10명의 대학생이 목숨을 잃은 인하대 발명동아리('아이디어뱅크')는 지난 25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상천초등학교 등 5개 학교 40여명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과학체험 봉사활동을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고 조짐은 이미 전날인 26일 오후 11시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폭우로 배수로가 넘치면서 일부 펜션과 주택 등이 침수됐다. 이어 27일 0시8분께 1차 산사태가 발생,사고 펜션 인근 주택에 흙더미가 밀려들었으며 10여분 뒤 2차 산사태가 나면서 순식간에 펜션들을 덮쳤다.

회사 동료 등 세 가족 6명이 2박3일 일정으로 펜션에 놀러 온 김모씨(57)는 "저녁 식사 후 펜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지인인 주민으로부터 '인근에서 산사태가 났다는데 잘 들어갔느냐'는 안부 전화를 받았다"며 "곧바로 펜션 주변을 살펴보니 토사가 흘러내려 가족 등에게 '빨리 피신하자'고 소리친 뒤 밖으로 나서는 순간 '우~웅 '소리와 함께 흙더미가 펜션을 덮쳤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또 "이 과정에서 일행 가운데 1명은 피신하다가 미처 챙기지 못한 신발을 신으려고 돌아서는 순간 흙더미에 밀려 크게 다쳤다"며 "흙더미와 건물 잔해물 등을 피해 도로 쪽에 피신한 사이 대학생들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이어지고 토사도 계속 흘러내리는 등 참혹했다"고 말을 이었다.

최초 신고자인 회사원 최모씨(33)는 "퇴근길 차량 운행 중 집 한 채가 흙에 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고 말해 산사태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날 오후 아들(인하대생 이민성 씨 · 24)의 사고소식을 듣고 강원대병원을 찾은 어머니 김모씨는 "봉사활동 그만하고 취업준비를 하라는 남편의 말에 아들은 올초부터 약속한 거라 아이들을 보러 꼭 가야한다고 고집했다"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라도 보내지 말 걸 그랬다"며 탄식했다. 휴가 후 부대로 복귀 중이라는 동아리 회원 신동규 씨(21)는 "어제(26일)도 동아리 형과 전화 연락을 했는데 아침에 산사태 사망자 명단에 형의 이름이 있었다"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인하대 1~4학년 학생 49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이 동아리는 1988년 설립 후 어린이들에게 발명에 관한 흥미를 키워주고 과학 지식을 가르치자는 취지로 매년 방학 때마다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춘천=하헌형 /인천=김인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