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공부법' 강의 요청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콩나물 기르기식 공부법'에 대해 얘기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콩나물 콩을 사다가 밑이 뚫린 시루 같은 곳에 받쳐놓고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 갈 때마다 콩 위에다 물을 붓는다. 밑이 뚫려 있으니 물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며칠 있으면 그 콩 위에서 싹과 뿌리가 나오면서 쑥쑥 자라 먹을 수 있게 된다.

공부도 이와 같다. 며칠 공부한 걸로는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 같지만 꾹 참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한달 두달 하다보면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수학에서 낙제점을 받아 반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은 필자는 담임선생님에게서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분부를 받았다. 광주에서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까지 오신 부모님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오더니 우리 아들이 바보가 됐다"는 한숨 섞인 아버지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때부터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벼랑에 매달린 심정으로 공부했더니 6개월 만에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성적을 내게 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는 고시 3관왕이 됐고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컬럼비아대에서 유학을 했다. 지금은 공부법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7살 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연아 선수도 좋은 예다. 9년 만에 '세계 왕중왕 대회'라고 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최고가 됐고 4년 뒤인 2010년에는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년간의 간절한 노력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하는 확실한 투자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를 보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1980년대 중반 판사 시절,눈 내리는 한겨울에 차를 타고 현장검증을 가다가 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져 앞 좌석에 앉아 있던 필자에게로 앞 유리가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앞 유리는 안전유리가 아니라 말그대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이었다. 그때 얼굴에 칼로 그은 것 처럼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한동안은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즈음 우리나라 자동차는 놀라울 정도로 수준이 높아져 전 세계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로 세계적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조선이나 반도체산업 등 지금 한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의 시초는 보잘것 없었다. 이처럼 10년의 간절한 노력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세계최고의 자리를 약속하는 확실한 길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필자도 얼굴 흉터를 안 보이게 하려고 매일 거울을 보면서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웃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사고가 난 지 꼭 10년 뒤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고 지금은 가끔씩 인상 좋다는 이야기뿐 아니라 "미남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는다.

고승덕 < 국회의원 audfbs@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