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은 1992년 케냐와 소말리아를 돌며 아이들을 돌보던 중 심한 복통과 경련을 느꼈다. 제네바로 돌아온 뒤로도 검진을 받지 않은 채 유니세프 일을 계속했다.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해 진찰을 받아 보니 대장암 말기였다. 석 달 만인 이듬해 1월 세상을 떴다.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겁니다. " 홍콩 배우 메이옌팡(梅艶芳)이 2003년 자궁경부암에 걸린 사실을 밝히면서 했던 다짐이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한 해 전 의사가 혹이 발견된 자궁을 들어내자고 했지만 미룬 게 화근이었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고창순 박사는 평생 암을 달고 다니면서도 잘 살고 있다. 인턴 생활을 하던 1957년 대장암,82년 서울대병원 부원장 시절 십이지장암,97년 간암에 걸렸으나 모두 수술로 치료했다. 그는 '암에게 절대 기죽지 말라'는 책도 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희대 박사도 2003년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대장 일부를 잘라냈다. 반년 뒤 간과 뼈로 전이됐다. 그 뒤로도 평균 반년에 한 번씩 재발했다. 무려 12차례의 발병을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이겨냈다.

암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는 여전하지만 죽을 병은 아니다. 암환자 10명 가운데 6명은 치료되기 때문이다. 5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이 60%라는 뜻이다. 미국 66%보다는 낮지만 일본(54.3%) 유럽(51.9%)보다 높다. 정기검진이 일반화된 데다 의술이 발전한 덕이다. 이에 자신을 얻었는지 최근 보건복지부가 2015년 암생존율 목표를 67%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암사망률도 10만명당 88명으로 내릴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암 치료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위암 생존율은 63.1%로 미국(26%) 캐나다(22%) 보다 월등히 높다. '순한 암'으로 꼽히는 갑상선암의 생존율은 99.3%,유방암도 90%나 된다. 가장 고약한 건 췌장암과 폐암이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고작 7.6%다. 자각 증상이 없어 초기 진단이 어려운 탓이다. 폐암도 17.5%에 불과하다.

암 환자는 매년 3.3%씩 늘고 있다. 80세까지 살 경우 3명 중 1명꼴로 암에 걸린다. 요는 조기진단이다. 대다수의 암은 0기 또는 1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80~90%로 높아진다. 반면 말기 생존율은 10~20%대로 뚝 떨어진다. 암을 무서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내 치료하라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