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고만 수습하던 '영원한 대책반장'이 자본시장의 미래를 위한 설계자로 바뀐 것 같습니다. "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금융투자업계 고위 인사는 금융위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본 뒤 이같이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 26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다. 2009년 2월 시행된 지 2년 만이다. 금융투자산업과 시장,기업,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477개 조문 중 약 40%에 해당하는 190여개 조문을 신설하거나 개정했다. 전면 개편 수준이다. 투자은행(IB) 요건을 정하고 대체거래소(ATS)를 도입하는 등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킬 만한 내용도 들어 있다.

김 위원장은 올초 취임일성으로 자본시장의 '혁명적 빅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석에서는 "4년 전 주무부처 차관으로서 법을 만들었는데,글로벌 금융위기로 시행령이 일부 퇴보하면서 대형 IB 출현이 미진해 아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금융투자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내용으로 글로벌 IB 탄생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지가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IB 선정기준을 자기자본 3조원으로 정한 것을 놓고 뒷말이 많다. 한쪽에서는 "기준을 너무 낮춰 대형 IB가 탄생하기 힘들게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기자본 2조4000억원이 넘는 5개 증권사만 다른 회사와 인수 · 합병(M&A)하지 않은 채 IB로 지정돼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벌일 것이란 이유에서다. 자기자본이 약 81조원(773억달러)인 골드만삭스에 견줄 만한 IB가 탄생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중소형 증권사가 성장할 가능성을 아예 차단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런 뒷말을 잠재우기 위해선 시행령을 마련할 때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정부가 의도하는 M&A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자격이 되는 증권사를 수시로 IB로 지정하고,실적이 없는 IB는 탈락시키는 등 진입퇴출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이 과정만 잘 거치면 김 위원장은 '자본시장 설계자'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을 것 같다.

서정환 증권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