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통념을 지키라는 평균적인 교육을 받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산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옳다고 규정한 것이 항상 '진짜'일까.

고교 시절 친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지금도 인상 깊다. "내 친구들 보면 착하고 공부만 하던 모범생 애들은 못된 남편 만나 고생하고,고교 때부터 빵집 다니며 남자들과 미팅한 애들은 남자 잘 만나 호강하며 지낸다. "27년이 지났는데도 그 이야기가 종종 생각이 난다.

필자를 찾아온 40대 어머니는 딸 뒷바라지에만 매달려 특목고에 외국 명문대까지 합격시켰는데 막상 가슴이 허전한 '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다. 특히 유학 떠나기 직전인 딸과의 다툼이 잦다. 귀가시간을 밤 11시까지 넉넉히 줘도 12시 넘어 귀가한다는 것이다. "따님에게 결혼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세요"라고 물으니 "네가 얌전히 자신을 좋게 잘 갖추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고 답한단다.

과연 그럴까. 나는 "두 가지를 갖춰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나랑 잘 맞는 좋은 남자인가를 볼 줄 아는 안목,둘째는 그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죠.그러기 위해서는 결혼 전 최소 두세 번의 연애는 필수적이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목표는 뭐예요"라고 물으니 없다고 했다.

요즘 어머니들 모임에 끼다 보면 자기 얘기가 없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과 의견 교환으로 대화가 가득 찬다.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으면 아이가 잘못돼 나쁜 엄마가 될 것 같은 불안에 싸여 있다.

"사회성을 길러주면 안 됩니다. 인간관계가 좋으면 공부를 못해요,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해요,엄마가 옆에서 지키고 시켜야 합니다"라고 얘기하는 교육 컨설턴트에게 고액의 강연료를 뜯기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유치원생을 둔 엄마에게 이제 영재교육을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호통치는 원장들도 있다고 한다. 엄마의 모성애를 타깃으로 한 '불안 마케팅'이다.

중3짜리 아들이 우동을 먹자고 해 집 앞 주점에서 아들은 우동에 음료수,필자는 술 한잔 하며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근사하게 얘기할 찰나 아들은 엉뚱하게 "아빠,재혼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자기 친구들 중 재혼한 부모가 꽤 있는데 서로 아끼며 알뜰살뜰 산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혼은 절대 안 된다'와 '행복을 위해선 재혼도 가능하다' 중 어떤 콘텐츠를 아들에게 전달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수많은 규범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나와 주변의 '감성적 행복'에 도움을 주는 '진짜'인가 반항해 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반항적 콘텐츠에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다. 반항적 콘텐츠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은 기우일지도 모른다.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