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주저앉을지 몰라 섣불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요. "

29일 남부순환도로 이면도로의 옛 로엔엔터테인먼트 건물 앞에서 만난 주민 K씨는 "보면 알겠지만 바닥이 다 꺼지고 기둥도 곳곳에 균열이 갔는데 건물 복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건물이 붕괴될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복구는 꿈도 꿀 수 없다"며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그치고 대규모 인력이 투입돼 복구가 한창인 서울 우면산 일대는 '토사쓰나미'에 이은 2차 건물 붕괴 우려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날 군 · 경,자원봉사자 등 1만7500여명이 복구작업에 나서 서울 남부순환로 불교TV~예술의전당 구간은 군데군데 황토 흔적만 눈에 띌 뿐 외형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우면산 주택가로 올라가기 위해 이면도로로 들어서자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건물과 아파트 앞에는 이틀 전 집중호우에 쓸려 내려온 토사물과 바위,나무들이 어른 허리 높이까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당장 급한 도로 복구에 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이면도로 상가나 주택 복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3명이 사망해 일대에서 피해가 가장 심했던 래미안 방배 아트힐 아파트는 4층까지 들어찼던 토사가 사고 후 만 이틀이 지나서야 치워지고 1층 모습이 드러났다. 이곳 102동의 한 주민은 "사고 당일(27일)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4시까지 흙이 밀려들어왔는데 복구인력은 이날 오후 9시 도착했다"며 "정부 당국이 조금만 더 일찍 와 도와줬으면 이같이 처참하게 피해를 보진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다른 이웃 주민은 "28일까지도 도움의 손길이 없어 청소 용역 10명을 고용해 수백만원의 비용을 썼다"며 도움의 손길을 호소했다.

인근 방배동 신동아 렉스빌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새벽부터 나와 밥도 못 먹고 삽으로 토사물을 걷어내고 있다"며 흙과 통나무가 사흘째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차 있는 신동아 렉스빌과 대우 로얄빌라트 사이 골목을 가리켰다.

포클레인 기사 김용봉 씨(51)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24시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며 "15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이처럼 많은 양의 흙을 치워 보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음주 초 또다시 집중호우가 내린다는 예보에 방배동 주민들은 우면산에서 추가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막기 위해 골목 곳곳에 흙자루를 쌓느라 분주했다.

방배동 주민 P씨는 "워낙 피해 지역이 많아 작업이 언제 마무리될지는 짐작하기 어렵다"며 "또 비가 내릴 것에 대비해 추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불안해했다. 방배동 래미안 아트힐 근처 복구작업에 투입된 71사단 소속 이승호 일병은 "28일에도 12시간가량 작업했지만 아직도 산더미같이 쌓인 흙이 남아 있다"며 "(추가로) 물이 내려오는 것을 막고 도로에 쌓인 흙을 치워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며 계속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김우섭/하헌형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