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퀼리브리엄'의 배경은 3차 세계대전 생존자들의 도시다. 사령관은 4차 대전을 막는다며 사람들에게 감정 제거제 주사를 강요하는 한편 거부자들은 가차 없이 제거한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무감각하던 주인공은 약을 거른 뒤 '전쟁 방지란 미명 아래 폭력을 휘두르는 게 정당한가'란 의문을 품는다.

'이글 아이'와 '기프트'는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 가공,인간을 지배하려 드는 슈퍼컴퓨터의 부작용을 다룬다. 정보수집 도구는 CCTV,휴대폰,신용카드 등.세계 어디에 있든 CCTV와 GPS시스템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대화를 엿듣고 명령한다.

'이퀼리브리엄'의 사령관이나 '기프트'의 NSA 국장이 내세우는 목적은 같다. 전쟁과 테러 예방이다. 빅 브러더에 의한 감정제거제와 에셜런(세계적 스파이망)을 가능하게 하는 건 편의와 안전을 위해 도입된 기술과 도구들이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만 해도 하루 평균 83.1회나 감시카메라에 찍힌다는 마당이다.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 한 장이면 지난 여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죄다 들킨다. 뿐이랴.듣도 보도 못한 부동산 소개업소와 대부업체,술집 등에서 전화와 문자,이메일이 쏟아진다.

어디선가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이메일 주소가 유출된 결과다. 상업용 스팸메일이나 문자 정도면 다행이다. 국세청이나 우체국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은 무작위 전화에 의한 것이라 쳐도 가족의 교통사고를 빙자한 보이스 피싱은 집 전화번호는 물론 가족관계와 식구들 휴대폰 번호까지 모두 알아냈다는 얘기다.

네이트와 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고 한다. 주민번호와 비밀번호는 암호화돼 안전하다지만 나머지만으로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길 없다. 흔히 다른 데서도 같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만큼 바꾼다고 해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터넷 검색과 포털에서 제공하는 이메일 계정은 개인정보 제공의 대가다. 유통업체의 회원용 마일리지도 그렇다. 이미 가입한 곳은 비밀번호를 바꾸는 등 보안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지만,호기심과 자잘한 이익에 개인정보를 너무 쉽게 내주지 말 일이다. 포인트만 해도 실제 사용 가능한 경우는 극히 적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