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 이어 기아자동차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새로 내놓는 차마다 히트를 치는 '신차 효과'와 함께 2005년 지휘봉을 맡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당시 기아차 사장)의 '디자인 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7년에 부도가 나고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뒤 품질과 디자인 혁신으로 환골탈태하며 10년 만에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동성 위기'에서 글로벌 메이커로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뒤 2004년까지 연간 3000억~8000억원의 영업흑자를 지속해왔다. 그러다가 2005년 영업이익이 750억원으로 급감한 뒤 2006~2007년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자동차를 해외로 밀어냈지만 팔리지 않았다. 평균 재고 기간이 7개월이 넘었다. 당시 국내 증시에서는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2005년 3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들 정의선 당시 현대 · 기아차 총괄본부 부본부장(부사장)을 기아차 사장으로 발령,"책임지고 정상화시켜라"고 특명을 내렸다.

정 사장은 품질유지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바로 '디자인 경영'이었다. 2006년 8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그해 9월 파리 모터쇼에서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기아차는 '직선의 단순화'라는 미래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하며 국내 자동차업계 최초로 '패밀리룩(디자인 통일)'을 시도했다. 2008년 6월 로체 이노베이션에 처음 적용한 이후 포르테와 쏘울,쏘렌토R,스포티지R,K7,K5로 이어지며 국내외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K5는 출시 당시 '엠블럼을 떼고 보면 마치 유럽 고급 자동차로 착각할 것'(뉴욕타임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기아차는 영업적자 기간 중에도 슬로바키아 공장,중국 제2공장 건설을 밀어붙여 2006년 말과 2007년 말에 각각 준공했다. 작년 2월에는 미국 조지아 공장을 완공,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해외 공장들의 가동으로 수익구조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말했다.

◆'비상(飛上)'은 계속된다

기아차의 광폭질주는 이어질 전망이다. 하반기에 프라이드 후속모델과 소형 크로스오버차량(CUV) '탐(TAM)' 등 신차를 출시,성장 기조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내년 초에는 대형 세단 K9도 출시한다.

물론 위협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율 하락,일본 자동차업체의 반격,경쟁업체의 신차 출시 등이 예고돼 있다. 이재록 기아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하반기 시장의 환율 전망을 종합하면 1030원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어 힘들겠지만 이익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높은 공장가동률과 낮은 재고 수준이 환율 상승의 완충작용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 상반기 글로벌 공장가동률은 107.5%로 전년 대비 9.5%포인트 상승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도 높은 가동률이 지속되면서 당분간 실적 개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