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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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올봄에 늦장가를 간 '강화도 시인' 함민복 씨가 10여년 전에 쓴 시입니다.
후배에게 들려준 주례사를 시로 다듬었다는데,노총각이 이런 이치를 어떻게 다 알고 있었을까요.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하고,서로의 높낮이뿐만 아니라 걸음의 속도까지 맞춰야 하는 '긴 상(床)'.
동갑내기 아내와 나이를 합치면 100살이 되고 신랑 신부의 성을 따면 '함박'인 그의 결혼식도 그랬습니다.
서른 중반부터 동막해변의 월세 10만원짜리 방에서 바다와 갯벌의 생명력으로 자신을 단련하고,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 떼어 출판사로 보내던 그가 '꽃보다 아름다운' 신부를 만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착한 부부'로 거듭나던 날.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던 그의 밥상이 어머니의 품처럼 둥글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 ·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