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비워둘지언정 아무 공연이나 하지 말라'는 게 구본무 LG 회장의 말씀이었죠.LG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니 좋은 공연만 엄선해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국내 문화예술기관 중 처음으로 초대권 없는 공연장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23만명의 회원을 가진 공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아무 공연이나 하지 말자'는 원칙 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는 '최초'의 수식어가 가장 많은 공연장이다. 문화예술단체 최초로 초대권 폐지,최초의 공연장 회원제 운영,최초의 1년 시즌권 판매 등 한국 공연계에서 낯설었던 시도들을 통해 현재 23만명의 회원,관람객 300만명을 바라보는 서울 강남권 대표 공연장이 됐다. 개관 당시부터 공연 기획을 주도해왔던 이현정 LG아트센터 공연기획팀장을 31일 만났다.

이 팀장은 "관객들에게 문화적 지평과 세계관을 넓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보기 드문 공연,품질 높은 공연'을 선정한다는 철학으로 미국이나 서유럽에 한정하지 않고 동유럽,아프리카,러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데 주력해왔다"며 "한국 관객에게 자극이 될 만한 작품을 찾는 데 보낸 10년이었다"고 회고했다.

LG아트센터의 많은 회원들은 아직도 2002년에 공연했던 러시아 연극 '검은 수사'를 인상 깊은 공연으로 꼽는다. 무대와 1,3층 객석을 모두 연기 공간으로 썼고,200석가량인 2층에서만 관람하게 한 것.이 팀장은 "3년간 결정을 못하고 논의하다가 우리가 하지 않으면 한국에는 소개 못할 것 같아 추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말했다.

530억원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LG아트센터는 1년치 프로그램을 연말에 한꺼번에 내놓는다. 장르,경향,성격 등을 고려한 포트폴리오 구성 프로그램을 적용해 관객의 충성도를 높인다. 자체 전산시스템(TMS)으로 시작한 회원제 등 일관성 있는 경영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대관 공연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개관 다음 해인 2001년부터 9개월간 장기 공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한동안 LG아트센터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공연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힌 LG아트센터는 지난 10년간 무용 발레 연극 뮤지컬 클래식 고음악 재즈 비언어극 등 다양한 장르를 들여와 선보였다. .

LG아트센터는 개관 당시부터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안무가 정영두와 '제7의 인간'을,연출가 서재형과 음악극 '코러스 오이디푸스' 등 다수의 공연을 공동 기획해 무대에 올렸다. 이 팀장은 "공연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년간 맺어온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우수 공연이 제대로 소개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