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물난리는 수십년 만에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왔다. 서울의 중심인 강남이 온통 물바다가 돼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산사태로 주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그것도 강남 중심지역이 폭우로 쑥밭이 되다니,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멋진 교량,휘황찬란한 분수 등 당장 눈에 띄는 공사에만 치중하고 보이지 않는 땅 속의 하수도나 빗물 배수관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에서 멋진 최신식 정부청사 완공식에 정치 지도자들이 모여 테이프를 자르는 행사를 여러 번 봤다. 하지만 땅 속에 묻은 하수도나 배수관 공사 완공식의 테이프를 자르는 행사는 본 기억이 전혀 없다.

둘째,어째서 강남이 극심한 수재를 당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 배수관 책임자의 답변이 걸작이다. "강북은 산이 많고 경사가 심해 물의 속도가 빠르고,한강이나 그 밖에 하천이 많아 물 빼기가 쉬운 데 비해 강남은 산이 없이 평평하고,하천도 없어 더 심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들을 때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미국에서 20년 남짓 토목설계회사를 경영한 나는 이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산이 없이 평평하면 파이프를 더 경사지게 묻으면 된다. 더 경사지게 파이프를 묻으면 경비가 더 들 테니 혹시 부실 공사는 아니었는지 의문스럽다. 파이프 사이즈가 작아서 감당을 못하고 맨홀을 통해 물이 쏟아져 나왔다는데,왜 애당초 파이프를 더 큰 사이즈로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설계 기준으로 잡았는지 궁금하다.

셋째,배수관이 막히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했어야 했다. 이번 물난리는 한강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났다. 산사태는 대비 팀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4피트가 넘는 축대 벽은 잦은 현장 점검을 통해 미리 추가 공사를 했어야 했다.

넷째,수십 명이 매몰돼 소중한 목숨을 잃은 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는 게 사후약방문이지만 이제라도 이런 대형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서둘러 마스터 플랜을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토목기술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선진 첨단기술 보유국이다. 그런데 바로 그 토목 첨단기술의 나라 수도 한복판이 물바다가 되고,산사태로 고급빌라가 매몰돼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물론 예측 못했던 폭우량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배수관 설계를 할 때 보통 100년마다 한번씩 오는 대규모 호우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엄청난 폭우 시 곳곳에 홍수가 나는 경우가 미국에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참사가 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경제대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그것도 멋진 초현대식 빌딩이 빼곡히 들어선 강남에서 이런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다는 건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