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이 지난 6월 발간한 기상백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년이 그 이전 20년에 비해 '12시간 150㎜ 이상의 호우' 빈도가 60% 증가했다. 시간당 50㎜ 이상 게릴라성 집중 호우는 1970년대 연평균 5.1회에서 2000년대 이후 12.3회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스콜성 집중 호우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마가 끝난 이후에도 여름철 내내 집중 호우가 내리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방재 인프라 및 시스템 등 수해방재 대책은 1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기후 변했지만…정부는 무대응

서울시내 배수시설은 대부분 '10년 강우 빈도 · 시간당 75㎜'로 설계돼 있다. 설계 강우 빈도가 10년이라는 것은 10년에 한 번 오는 폭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 27일 관악구에 시간당 113㎜의 집중 호우가 쏟아진 것을 비롯해 강남권에 시간당 70㎜ 이상의 폭우가 내리자 강남역 일대 등 저지대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서울시 등 관계당국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가 불가피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집중 호우의 빈도나 양이 점차 늘어나는 등 기후가 변화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07년부터 하수관 및 빗물펌프장 등의 용량을 증설하는 등 수방 대책을 진행해 왔지만 예산 부족을 빌미로 공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박희경 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기상 이변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한국도 기상 이변에 대비한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후변화 적응형 설비'를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도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치수시설 기준을 새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재 컨트롤 타워 없어…투자도 부족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한 산사태 및 침수사고에 대처한 정부의 위기관리는 허점 투성이었다. 재난 예보 시스템에서 위기대응 매뉴얼 실행까지 제대로 작동한 게 없는 총체적 부실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초구청은 산림청에서 보낸 산사태 경고를 무시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모든 재난에 대비해 예보와 방재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방재관리 시스템은 국토안보부 내 설치된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주관한다. 재난 예방 및 복구와 관련 다른 부처를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일본도 방재와 재난 복구를 총괄하는 중앙방재회의가 총리 직속기구로 편성돼 있다. 반면 한국은 호우특보는 기상청,교통통제는 경찰청,산사태주의보는 산림청에서 내리는 등 위기관리 대책이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

방재 관련 투자가 소홀한 것도 문제점이다. 올해 국가 연구 · 개발(R&D) 예산 14조9000억원 중 방재 분야 예산은 0.6%인 796억원에 불과하다. 재난 예보의 최전선에 선 기상청의 연간 예산은 선진국의 10% 수준인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순수 R&D 예산은 400억원 정도다. 반면 선진국은 일반적으로 평균 국가 R&D 예산의 2%를 방재 분야에 투자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