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이 친환경 C4 화합물 개발에 나선 것은 '식품기업'을 넘어 '바이오 · 소재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본격적인 첫 행보다. 공동 연구 · 생산 파트너가 생명과학 분야의 특허를 다량 보유한 미국 메타볼릭스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생물에서 산업소재를 뽑아내 이 제품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식품 · 사료용 소재인 핵산 라이신 트레오닌 등만 생산해온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이 산업용으로 확대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재현 회장(사진)이 이끄는 CJ그룹도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열게 된다.

◆1년 후 GBL 대량 생산 방침

이번 제휴가 관심을 끄는 것은 메타볼릭스의 바이오화학 관련 기술에 CJ제일제당이 60년 가까이 식품사업을 통해 쌓아 온 발효기술이 결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메타볼릭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들이 1992년 설립했으며,'식물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을 개발한 회사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테크 파이오니어스(기술 선구자)'에 트위터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C4 화합물은 반도체 플라스틱 섬유 생활용품 등 다양한 산업의 기초소재다. 지금은 대부분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뽑아내고 있지만,양사는 미생물 기반의 '친환경 버전'으로 개발해 대량 생산하기로 했다.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 C4 화합물은 지금도 시범 생산이 가능하다. 다만 값이 비싸 시장성이 낮다. 상업화를 위해서는 대량 발효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두 회사가 C4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품목은 전자부품 ·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세정제 원료로 쓰이는 감마부티로락톤(GBL)이다. GBL은 부탄디오르(BDO) 테트라하이드로푸란(THF) 폴리에스터엔지니어링수지(PBT) 등 다른 C4 제품군에 비해 가격이 가장 비싼 데다 친환경 GBL 양산에 먼저 성공하면 나머지 품목은 손쉽게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GBL 생산기술은 리튬전지 제조에 사용되는 엔-메틸피롤리돈(NMP) 생산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양사는 올 연말까지 공동 연구와 기술 검증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경제성을 평가해 대량 생산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기존 석유화학 기반의 제품과 비교해 품질과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면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며 "연 30억달러에 달하는 기존 C4시장을 대체하려면 충분한 시장성이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탕회사'서 '바이오 기업' 도약

메타볼릭스는 자사의 기술을 CJ제일제당의 해외 바이오 공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처드 이노 메타볼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올 2분기 실적발표에서 "올해 회사의 산업소재 사업을 벌이는 데 있어 CJ제일제당과의 'C4 공동개발협약'은 가장 중요한 단계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나스닥 상장사인 이 회사가 CJ제일제당과의 협약체결 사실을 이처럼 공개하자 다음날 이 회사 주가는 15% 이상 상승,현지 투자자들로부터 양사 협력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양사는 이 협약에 따라 적극 협력하면서도 독점적 파트너십에 대한 의무는 두지 않았다. 앞으로 시장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다른 업체와도 손잡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탕을 모태로 성장해온 국내 대표 식품기업이다. 하지만 식품산업이 성숙기를 맞은 이후 바이오 · 소재 부문을 확대함으로써 사세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바이오부문장 출신인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은 최근 "CJ제일제당은 이제 단순한 식품기업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바이오 분야를 새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바이오,신소재,식품글로벌 등 3대 성장동력을 통해 지난해 6조원이었던 회사 전체 매출을 2015년엔 15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 C4

탄소(원소기호 C) 분자 4개의 연결구조를 기반으로 한 화합물.반도체 플라스틱 섬유 생활용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기초소재로 쓰인다. 세계 시장규모는 연 30억달러로 추산된다. 지금은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추출하고 있으나,친환경 생산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