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에서 동료의사 2명과 함께 영업하고 있는 영상의학 전문의 A씨는 최근 자기공명영상기기(MRI) 1대를 구입했다. 한 대형 병원을 통해 중고 제품을 구입했는데도 가격이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원래는 방사선(X-ray)촬영기와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만 보유하고 있었지만,최근 병원마다 경쟁적으로 MRI를 도입하다 보니 A씨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A씨는 "비싼 가격에 장비를 들여놓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MRI를 찍어볼 것을 은근히 권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MRI는 한 번 촬영하는 데 50만~60만원의 비용이 든다.

MRI와 같은 고가 의료장비는 과거에 대형 병원에서 주로 볼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에서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의료비가 고비용 구조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의료장비 도입 급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의료기관의 MRI 보유대수는 1040대다. 2년 전(891대)에 비해 16.7%(149대) 증가했다. 의료기관 종별로 따져볼 때 상급 종합병원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MRI 보유대수가 122대로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병원급과 의원급은 각각 410대와 183대로 2009년 6월 말에 비해 31.8%(99대),16.5%(26대) 늘었다.

CT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말 국내 의료기관이 보유한 CT는 2521대로 2009년 6월 말(2383대)보다 138대 증가했지만 상급 종합병원에서 늘어난 숫자는 단 1대에 그쳤다. 이에 비해 의원급에서 보유한 CT는 2009년 6월 말보다 무려 106대 늘어난 1429대에 달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인구 100만명당 CT 보유 수는 한국이 35.66개(지난해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97개보다 많다"며 "MRI도 한국이 20.15개로 OECD 평균(1.5개)의 14배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중소 병 · 의원은 대형 병원으로부터 노후된 장비를 받아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현행 제도가 노후도에 따라 수가 차이를 두지 않고 있어 병 · 의원들의 고가 의료장비 도입을 부추기는 측면도 많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최근 CT · MRI의 수가를 인하하는 등 개혁에 나섰으나 병원 등 의료계가 강력 반발,현재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감기 걸려도 종합병원 가는 환자

환자들이 상급 종합병원으로 쏠리는 현상도 과잉 의료를 낳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상급 종합병원의 외래 진료비는 2005~2009년 연평균 증가율이 17.47%에 달했다. 외래 환자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급의 증가율(7.11%)보다 훨씬 높았다.

환자 점유율도 상급 종합병원은 2005년 10.80%에서 2009년 14.22%로 급증했지만 의원급은 같은 기간 53.20%에서 48.41%로 감소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실장은 "내원일당 진료비가 의원급에 비해 5배 이상 높은 상급 종합병원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1차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잉진료 낳는 행위별 수가제

전문가들은 과잉 진료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진료비 지급 체계의 근간인 '행위별 수가제'를 꼽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란 의료행위 각각에 대해 수가를 정해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행위별 수가는 복지부(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통제하고 있으므로 각 의료기관들 입장에서는 의료행위를 늘려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신 실장은 이에 대해 "수가가 현행처럼 사전에 결정되는 게 아니라 진료량과 연계해 총 진료비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수가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시키고 진료량은 노령화 정도,소득 증가 등을 반영해 정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