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가 의회와 내년 말까지 적용할 수 있는 부채한도를 증액하기로 합의했으나 임시 처방이라는 지적이 많다. 재정적자 감축 규모는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민주당이 주장해온 증세안은 빠져 앞으로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민감한 주요 사회복지비 지출 삭감도 뒤로 미뤘다.

◆민감한 쟁점은 피해

백악관 ·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날 합의해 발표한 향후 10년간 총 지출 삭감 규모는 2조4170억달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정부(1953~1961년) 이래 가장 적은 정부지출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미 정부가 같은 기간 재정적자를 4조달러 감축해야 국채 최고등급(AAA)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또 공화당이 고수해온 2단계 부채한도 증액 방식을 받아들였다. 1차 9000억달러와 2차로 1조5000억달러의 부채한도를 증액받는 대신 공화당이 반대해 온 세금 인상안은 배제하는 데 합의했다. 노인층 대상의 의료지원비(메디케어) 관련 지출도 2차 증액 때 삭감하기로 했다. 두 가지 논란의 불씨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재정적자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거듭 지적했다. 노인층과 저소득층 대상의 의료보험(메디케이드) 지원비를 삭감하면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 혜택까지 없애야 한다는 게 그의 요구였다. 그는 협상이 타결되자 첫 일성으로 "우리는 부유층과 대기업에 감세와 특별공제 혜택을 포기해 공정한 몫을 지급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빚 수렁 벗어나려면

지출 삭감으로 재정적자를 줄이면 그만큼 부채를 줄일 수 있다. 미 연방정부가 흑자재정을 기록한 전례가 없진 않다. 빌 클린턴 전 정부 시절인 1997~2001년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고 5조9500억달러에서 유지됐다. 2001년의 경우 재정흑자가 8500억달러에 달했다. 이번 합의에도 의무적으로 균형재정을 달성하자는 수정안을 헌법에 명시할지 여부를 놓고 표결할 안을 담았다.

그러나 흑자재정을 이루려면 경제성장의 과실로 세수를 더 거두는 길도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흑자재정과 2차대전 직후 미국이 그랬다.

2차대전 직후 미 연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인 122%에 달했으나 향후 40년에 걸쳐 33%(현재 78%)로 떨어졌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지출 삭감 덕분이 아니라 왕성한 경제성장이 비결이었다. 물론 그때에 비해 요즘 미 경제성장률은 훨씬 낮다. 지난 2분기는 1.3%였다.

이를 잘 인식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부채 증액안에 포함된 지출삭감액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정도"라며 "취약한 경제 상황을 감안해 갑작스럽게 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채 한도제 폐해도

벼랑 끝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계기로 연방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채한도를 증액받도록 하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지출안을 승인하고선 다시 지출에 필요한 부채한도를 증액하기 위해 정부와 협상해야 하는 소모전과 불합리를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상 과정에서 이 제도를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부채증액 권한을 주자는 차선책(플랜B)이 제시되기도 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연방정부 부채는 정당하다"는 내용의 수정헌법 14조4항을 적용,대통령에게 증액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