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진정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가 지난달 4.7%로 다시 치솟았다. 폭우 등 기상이변으로 올 하반기 첫 달부터 물가가 다시 들썩이면서 연간 물가 상승률을 4%로 억제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농산물 수급과 가격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상이변에 공공요금 인상 겹쳐

농산물 가격이 전달에 비해 급등했다. 열무(95.1%)와 상추(94.4%)가 두 배로 뛰었고 배추(63.9%),시금치(71.8%),호박(39.7%)도 올랐다.

양동희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0.7% 가운데 채소류 기여도가 무려 42.4%를 차지했다"며 "신선채소류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21.5%에 달해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5년 이래 최고치"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정유사의 기름값 100원 인하 조치가 끝나면서 휘발유 · 경유가격도 전월보다 각각 2.3%,2.4% 올랐다. 집세 고공행진도 이어져 전월 대비로 전세가 0.3%,월세가 0.2% 상승했다.

1년 전에 비해서는 전세와 월세가 각각 4.7%,2.9% 올랐다. 월세는 1996년 10월(2.9%) 이후,전세는 2003년 5월(4.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지방 공공요금 역시 들썩이고 있다. 전월 대비로 대구,대전,광주의 시내버스 · 전철료가 15% 올랐고 울산도 시내버스요금이 15.6% 올랐다. 전북의 하수도료가 58.7% 오른 것을 비롯해 경남의 상 · 하수도료(7.4%,5.4%)와 제주의 상 · 하수도료(11.0%,6.1%)도 상승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이 3.8%로 상당히 높게 나온 것은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4%물가 억제 물건너 가나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농축수산물의 상승세는 일시적인 것으로 9월 이후에는 물가가 4%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낙관론의 근거는 기저효과에 대한 기대다. 작년 물가는 8월까지 2%대에서 안정되다가 9월 3.6%를 시작으로 배추가격이 폭등한 10월 4.1%로 올랐다. 올해 9월부터는 기저효과가 본격적으로 작용해 전년 동월비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달부터 전기요금이 평균 4.9% 오르는 등 공공요금 인상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2.0%에 그쳤지만 산업용이 최고 6.3% 올라 원가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상품가격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또 수도권 버스와 전철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고,다음달에 도시가스요금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물가상승 압력 여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하반기에도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이후 기저효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더라도 물가상승 압력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지난달 4.7%로 치솟은 것에 대해 "걱정이 된다"면서도 "예상치와 큰 차이를 보인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는 물가가 낮아질 것으로 봤으나 꼭 7월부터 낮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은이 지난달 전망한 소비자물가 4.0% 억제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에는 "전망한 지 2주밖에 안 지났다"고 말했다.

서욱진/차병석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