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아줌마 기자가 박재완 장관께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다락같이 치솟는 물가를 잡을 뾰족한 수도,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방법도 나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죽하면 "백화점이나 호텔,대형마트 등에서 쓰는 것까지 소득 공제 대상으로 인정하는 게 맞느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발언이 나왔겠는지요.

'백화점 사용액은 공제에서 뺀다더라' 식의 보도로 파문이 일자 방향은 바뀐 듯합니다. 현재 해외여행과 자동차 구매,고속도로 통행료 정도인 신용카드 공제 제외 항목을 확대하거나,지출 용도별로 공제율을 차등화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하니까요. 전통시장 사용액 등에 대해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이라는군요.

품목에 따라 전통시장이 백화점보다 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맞벌이 주부는 싸고 좋은 물건을 파는 전통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 직장의 경우 오후 6시로 돼 있는 퇴근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5일제도 그림의 떡일 뿐인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맞벌이 주부들은 흔히 퇴근 길에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러 마감세일 식품으로 저녁과 아침식사 거리를 장만하고,정상 매장이 아닌 간이매대에서 떨이세일 상품이나 저가 기획상품을 삽니다. 이들에게 백화점과 마트는 고급스러워서 찾는 곳이 아니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필요한 걸 손쉽게 장만하기 위해 찾는 장소인 겁니다.

뿐인가요. 어디서 뭘 샀는지 몽땅 드러나는 신용카드를 쓰는 건 연말정산 때 몇 푼의 세금이라도 돌려받고 싶어서입니다. 맞벌이 여성의 경우 신용카드 공제 외엔 세금 공제를 받을 길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를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는 대신 드리는 수고비 내지 생활비는 물론 부탁할 데가 없을 때 지불해야 하는 육아(가사) 도우미 비용 역시 공제받을 길이 없습니다. 수혜자라곤 혼자뿐인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떼이면서도 병원 갈 시간이 없어 웬만큼 아픈 건 참고 맙니다.

장관의 말은 힘을 지닙니다. 박 장관처럼 실세로 여겨지는 이의 말은 더하겠지요. 백화점 사용액까지 소득공제를 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발언은 마감 세일과 기획상품,마일리지 적립과 신용카드 공제에 목 매는 맞벌이 주부의 가슴에 못을 박는 건 물론 백화점 이용은 '악덕'이란 인식을 심어 가뜩이나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더 쪼개놓을지 모릅니다.

'유통기한 표시제 개선책 강구'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듭니다. "미국에선 식품이나 화장품에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는데 우리도 개선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했다는 건데 식품과 화장품의 경우 그나마 믿고 살 수 있는 건유통기한 덕입니다. 간혹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묵과 유부초밥 등을 싸게 구입할 수 있기도 하구요. 유통기한을 없앨 경우 안전은 누가 책임질 건지요.

장관께선 또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유연근무 신청서'를 제출하고 "앞으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6시에 약속할 예정"이라고 했다지요. 주변 눈치를 안 봐도 될 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뜻도 될 테고,상대의 사정에 상관 없이 약속시간을 잡을 수 있다는 표시이기도 할 테지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8~5제'의 장점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더군요. '저녁을 빨리 먹으면 늦은 식사에 따른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가족과의 대화시간이 늘어나 집 걱정 없이 회사 일에 집중,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자기계발에 투자할 여유가 생긴다. 여가를 활용한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등.'

다 맞는 말이지만 6~7시는커녕 밤 9~10시 전에 퇴근하기 힘든 사람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생각해봤는지요. 야근족 덕에 매상을 올리는 사무실 근처 식당 경기는 또 어떻고요. 박 장관은 성실하고 특권의식도 적은 관료로 꼽힙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탄탄대로를 걷다 보니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이 땅엔 법과 제도대로 보장받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잊은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