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건강보험] (3·끝) 퇴직했더니 건보료 두 배…소득 없어도 집·車 따져 부과
30년간 중소기업에 다니다 최근 퇴직한 김모씨(62)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볼 때마다 열이 받는다. 지금 내는 보험료가 월급을 받을 때의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득이 없는데 보험료를 왜 더 많이 걷느냐'고 건강보험공단에 항의를 했더니 "살고 있는 아파트와 자동차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식이 없는 김씨는 같이 은퇴한 친구가 직장에 다니는 아들 덕분에 직장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울화통이 터졌다.

건강보험 부과 체계의 문제점은 직장과 지역 보험이 통합된 2000년부터 계속 지적되고 있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데다 건보 재정 문제까지 심각해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원화된 부과 체계가 문제

건강보험은 직장과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것이 통합된 이후에도 보험료 부과 기준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가 다르다. 직장에서 지역으로,혹은 반대로 옮기는 경우 보험료 부과액이 달라지는 이유다. 김씨처럼 실직으로 소득이 감소했는데도 재산 등의 이유로 보험료가 증가하는 사례가 많다.

같은 지역 가입자인데도 과세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부과 기준이 달라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법에 따르면 연소득 500만원이 넘는 사람은 종합소득 · 재산 · 자동차에 따라 건보료를 내도록 돼 있다. 반면 5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재산 · 자동차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고 소득 기준은 '평가소득'이 적용된다. 재산이나 보유 자동차를 감안하면 이 정도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보험료를 매기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사실상 소득을 축소 신고한다고 간주하는 것이어서 저소득 서민들에게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2003년 7월부터 근로자 5인 미만의 병 · 의원과 약국,법률사무소 등이 직장 가입자로 전환할 수 있게 허용된 것도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영세 사업장의 건강보험 가입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 직종이 보험료를 편법적으로 덜 낼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직장과 지역 간 차이 커

직장과 지역 가입자의 형평성도 문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가족은 피부양자로 올려 보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모든 세대원이 보험료를 부담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린이에게도 부담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지역가입자는 보험료 납부 기준도 종합소득뿐만 아니라 재산 자동차 등 범위가 넓다. 근로소득만 따지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이자 · 배당 · 부동산 · 사업 · 근로 · 연금 등을 합한 종합소득을 기준을 한다는 점만으로도 보험료 산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 관계자도 "보험모집인이나 학습지 교사 등은 실제로는 일반 근로자와 같은데도 건강보험에서 지역가입자로 간주해 사업소득에 준하는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고 인정했다.

직장 피부양자는 사업소득과 임대소득만으로 소득 유무를 판단하기 때문에 고액의 금융소득이 있는 경우에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가입자 역진적 구조 개선해야

지역가입자에게는 역진적 부과 구조가 적용된다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건강보험료를 산정할 때 과세표준액 기준으로 6000만원 소득자가 내는 보험료는 600만원 소득자가 내는 보험료의 3.5배 수준이다. 재산의 경우 1000만원 재산 보유자에 비해 1억원 보유자가 내야 하는 보험료는 10배가 아닌 6.6배다. 직장 가입자들이 일률적으로 소득액의 5.64%(절반은 회사 부담)를 보험료로 내는 것에 비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소득이 많다는 것도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직장가입자는 연간 소득의 54.5%가 근로소득이고 나머지 45.5%는 사업 또는 재산 소득이다. 전체 소득의 40% 이상이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기에 앞서 숨은 세원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