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2000년부터 10여년간 펼쳐왔던 사업이지만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결국 처분키로 한 것이다. 이는 다른 그룹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대기업 내부거래를 겨냥한 정부와 여론의 전방위적 압력이 먹힌 결과가 돼버렸다. 그러나 대기업의 내부거래가 일어나는 원인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간의 구조적 효율성 격차는 절대로 줄일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 역시 불가능하다.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내부사업을 늘리는 이유가 있다. 재벌 총수일가의 편법 재산증식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오너가 있는 재벌뿐 아니라 주인이 없는 포스코,KT,심지어 공기업들도 MRO를 영위한다. 대기업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학이 따로 있다. 원래 기업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탄생했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문어발 경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세계적인 보편 전략이다.

MRO만 하더라도 그렇다. 내수 중소기업에 아웃소싱하는 것보다 대기업이 직접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대기업은 국제경쟁을 거쳐 고도의 생산성을 갖는 효율적 조직으로 이미 탈바꿈해 있다. 그 어떤 내수 중소기업에서 매입하는 것보다 싸다. 간단해 보이는 빌딩관리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 최고급 빌딩은 영국계 S사가 휩쓸고 있다. 빌딩 청소 같은 일견 간단한 일도 마찬가지다. 내수 중기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높은 생산성을 과시하는 국제적 MRO들이 득실거린다. 이 눈높이 수준에서 조달하지 않으면 국제적 수준의 기업이 될 수 없다. 억지로 내수기업에 맡기라면 이는 절망이다. 기업은 자선사업이 아닌 것이다. 우리끼리 해먹는 그런 시장도 아니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내수시장은 고도로 전문화된 시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소위 트리클다운 문제도 내수시장의 후진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미 세계적 기업인 대기업의 효율성 기준을 내수 눈높이에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과 같다. 내부거래 아닌 이웃소싱이 더 효율적이라면 기업으로서는 내부화를 시도할 이유가 없다.

국민경제를 왜 재벌의 선의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하고 자선성 공익재단을 만든다고 해결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경제의 효율성 문제다. 정부가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시장의 칸막이를 친다면 그것은 더 큰 시장왜곡과 저성장만 낳을 뿐이다. 내수기업의 경쟁력에 주목하는 것이 옳은 해법이다.

이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반기업 정서, 반시장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더 철저하게 자본이익률에 도전하자.눈앞의 효율성보다 더 멀리 더 높은 효율성에 도전하자.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상상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리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