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에 정신이 팔려 있던 미국 경제가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망령에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연방정부 부채상한을 간신히 늘려 디폴트 위기를 벗어났지만 악화된 실물지표에 빛이 바랬다. 생산 고용 소비 부동산 등 대부분의 지표들이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못하자 최근 경기둔화는 소프트패치(일시적 경기둔화)가 아니라 더블딥의 전조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백악관과 의회가 향후 10년간 2조4000억달러 재정지출 삭감에 합의한 마당이라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기도 어려운 상태다.

◆미 실물지표 모조리 부진

1일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장중 1% 이상 급락했다.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이 막판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에 상승세로 출발한 다우지수는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7월 제조업지수가 50.9로 집계돼 2009년 7월 이후 최저로 추락했다는 소식에 가파르게 떨어졌다. ISM 제조업지수는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50을 밑돌면 위축을 뜻한다. 이 지수는 경기 동향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선행지수다.

제조업지수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당장 월가에서는 더블딥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기준 1.3%로 예상치(1.8%)를 크게 밑돈 데 이어 선행지수까지 부진하자 '결정타'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생산 부진에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5월과 6월 연속 3.6%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6월 개인소비도 0.2% 줄어들며 거의 2년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실업률 역시 9%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메리디스 휘트니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실물지표에서 더블딥 조짐이 확연하다"고 주장했다.

◆中 · 유럽 부진으로 '내우외환'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중국도 여유가 없다. 지난 1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7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7로 전월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4개월째 하락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7월 PMI가 50을 밑도는 49.3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지속적인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이미 경기 위축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도 부진하다. 이날 유로권 7월 PMI가 지난 2년여 사이 가장 낮은 수준에 그쳤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금리도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그리스 포르투갈을 무너뜨렸던 7%대 국채금리에 직면하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