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法? 조금 어기면 어때…승소만 하면 되지"
지난달 21일 수도권 신도시 인근의 한 대형 할인점에 두 명의 중년 남성이 "○○경찰서 소속"이라고 밝히며 찾아왔다. 이곳 기계실에서는 지난달 2일 냉방기를 고치던 인부 4명이 가스 유출로 사망했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조사한다며 기계실에서 사진을 찍다 수상하게 여긴 할인점 직원들한테 붙들려 추궁을 당했다. 확인 결과 이 할인점과 책임을 다투고 있는 설비업체를 대리하는 로펌의 직원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 무죄를 다투고 수억원에서 수천억원 규모 소송이 즐비한 법조계에서는 승소가 지상 최대 과제다. 법조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이겨야 살아남는 분위기다.

◆판결도 안 났는데 "우리 이겼어요"

담당 판 · 검사들과 같이 근무한 전관이나 학교 동문 등 온갖 연줄을 동원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非)법대 출신으로 법조계에 대학 동문이 많지 않은 한 검사는 몇 달 전 자신이 수사 중인 기업인의 법률 대리인 명단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건을 맡은 로펌에서 변호사 5명 가운데 자신과 같은 과 출신 선 · 후배를 2명이나 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출신 고교까지 자신과 같았다.

법정 다툼은 진술 사항을 미리 법원에 제출하는 준비서면에서부터 치열하다. 변호사들은 종종 준비서면 일부를 판결문처럼 써서 내기도 한다. 본인이 변호하는 의뢰인이 승소했다고 가정하고 능청스럽게 쓰는 방법이다. 한 변호사는 "시간에 쫓기는 판사들이 판결문 형식의 준비서면을 보면 혹시라도 이를 베껴 판결문을 작성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라고 설명했다.

법정에서의 눈치전도 치열하다. 재판부의 조정은 '간보기'의 수단으로 종종 쓰인다. 재판부에 "고객에게 한번 조정을 권유해 보겠다"며 조정안을 받은 뒤 본인이 변호하는 쪽에 더 유리한 조정안이 나오면 조정을 하지 않고 다시 본안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한 변호사는 "1억원을 달라는 소송에서 재판부가 '8000만원 받는 쪽으로 조정하자'고 하면 본안에서는 1억원 다 받을 확률이 높지 않겠냐"고 말했다.

◆승소하려 증거 조작도

소송에서 이기려면 유리한 증거 수집이 필수다. 로펌 직원들은 어떤 때는 탐정이나 스파이를 방불케 하기도 한다. 한 대형 로펌은 소송 상대방 회사의 자료를 빼내오기 위해 직원을 상대편 로펌의 변호사로 위장해 보냈다가 상대방 회사 직원들의 신원 조회에서 들통나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심지어 주요 증거를 조작하기도 한다. A로펌은 최근 토지 분쟁과 관련해 경쟁 로펌이 법원에 증거로 낸 서류를 검토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진이 흑백으로 시커멓게 복사된 가운데 해당 토지 구역을 나타내는 숫자가 합성된 듯 보였다. 확인해보니 경쟁 로펌에서 다른 구역의 사진을 조작해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로펌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해당 사진은 증거에서 제외됐다. A로펌은 그러나 사문서 변조죄 등으로 형사고소하지는 않았다. 법적으로 대응하면 상대방에서는 A로펌 측 증인들에 대해 이것저것 트집 잡아 위증죄로 고소하는 등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사건수임을 위한 수법도 가지각색이다. B로펌은 파생금융상품 관련 불법사건의 피해자를 도와 진정서를 작성하는 데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서를 접수한 검찰에서 사건수사에 나섰고,사건연루자들은 대부분 B로펌에 사건을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모 기업 관계자는 "로펌에서 '우리 정보통에 의하면 당신들 조만간 수사를 받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어떻게 그곳에 사건을 맡기지 않을 수 있겠나"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불리하면 '판 · 검사 인사 기다리기'

의뢰인에게 불리한 판결이나 수사결과가 나올 것 같으면 일단 시간을 끌고 본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의뢰인에게 덜 원망받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며 담당 판 · 검사가 바뀌길 기다리기도 한다.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피고인이 지난주부터 지병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검찰 재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8월 인사를 앞두고) 수사팀이 교체되길 바라는 전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수사팀이 '강성'으로 알려져 있어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고 변호인단에서 조언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원 인사를 기다리며 재판을 지연시키는 일도 잦다. 온갖 이유를 끌어들여 다음 기일을 인사 이후로 잡는 방법이다. 한 변호사는 "새 재판장에게 판단을 받아보는 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변호사가 판사실을 찾아가거나,전화로 변론하는 이른바 '소정 외 변론'은 고전적 수법이지만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한다. P변호사는 법정에서 C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가자료가 필요하다고 요청했고,판사도 수긍했다.

그런데 상대편 변호사가 강력히 반발하자 판사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라는 것.이에 앞서 판사와 상대편 변호사가 입을 맞춘 듯이 동시에 10분이나 늦게 법정에 들어올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고 한다. P변호사는 "우리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는 걸로 봐서 재판부와 상대편 대리인이 법정 밖에서 이미 교감이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도원/이고운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