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칼럼] 국민주 방식 민영화의 오류
솜씨 좋고 강단 있는 경제장관들이라면 이렇게까지 끌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년 넘게 갑론을박만 벌이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장관들은 좌고우면을 하고,청와대의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말 한심한 풍경이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우리금융과 대우조선해양을 국민주 방식으로 민영화하자고 제안했을까.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는 세금으로 정상화시킨 공기업을 저소득층에게 싸게 팔아 민영화의 혜택을 나눠주자는 아이디어다. 알짜 기업을 국내외 대기업이나 펀드 등에는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금융과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는 국민주 방식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주 매각을 특혜시비나 국부유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했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경제적으로도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처음 시도한 것은 1988년 포스코(옛 포항제철)였다. 1년 뒤엔 한전이 국민주 2호로 상장됐다. 우량 거대 공기업의 소유권을 국민에게 돌려줘 재산형성을 지원하고,주식투자 인구를 늘림으로써 증시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였다. 당시 폭발하는 사회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을 겨냥한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민영화한 지 3년도 채 안 돼 주가가 33~45%나 떨어졌다. 저소득층의 재산형성 취지도 물거품이 됐다. 이들은 다시 주식을 시장에 내놨고 싼 가격에 이 주식을 거둬들인 외국인과 고소득자들만 이익을 챙겼다. 특정 계층에 가격을 할인해서 판 '한국형 국민주 매각'은 두 회사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막을 내렸다.

국민주 매각은 해당 기업의 자산규모가 워낙 크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민간에 팔았을 경우 경제력 집중의 폐해가 심각하게 우려될 때 극히 제한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우리금융과 대우조선해양은 결코 그런 기업이 아니다. 두 회사가 민간에 넘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원래부터 민간 기업이었다.

게다가 두 회사는 비상장이었던 포스코나 한전과 달리 이미 상장된 주식이다. 국민주라는 이름으로 저소득층에게 할인 매각하면 기존 주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집단소송도 우려된다.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물건너간다.

경영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가 우려된다.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으면 경영에 대한 주주의 참여나 적절한 통제가 어렵다. 민간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갖는 완전 민영화보다 경영이 더 개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공기업의 폐해가 재연될 공산이 너무 크다. 다른 민간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대우조선해양은 특히 그렇다.

한나라당이 복지를 앞세우고 분배위주의 정책으로 기운다고 해서 성장의 과실을 억지로 나눠주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매각 후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경우 쏟아질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국민주에 '필'이 꽂힌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전문가들의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이번에는 인천공항공사부터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적용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금융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국민주 매각 여론이 좋지 않자 독점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정부와 청와대 모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주 민영화론을 잠재울 능력이 없는 정부도 문제라는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전직 경제관료는 "경제팀에 경륜과 식견으로 여당 지도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장이 버티고 있다면 그런 아이디어를 계속 떠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복지 티켓을 들고 과속하는 여당과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는 경제팀이 우리 경제를 어두운 터널로 몰아가고 있다.

고광철 < 논설위원 / 경제교육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