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물기가 많은 버스 바닥에서 탑승객이 넘어져 다쳤다면 운전자와 승객 중 누구의 과실인가. 법원의 판단 기준은 탑승객의 신발 종류였다.

김모씨(63)는 2008년 전북 전주시에서 목적지에 도착하자 내리기 위해 버스 뒷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버스기둥 손잡이를 잡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는 순간 김씨는 버스 바닥에서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고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고 당일 비가 내렸고 버스 바닥에도 빗물이 고여 미끄러운 상태였다. 당시 김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김씨와 해당 버스의 공제사업자인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이 사고의 책임이 "버스 운전사에게 있다"(김씨) "탑승객 김씨의 과실이다"(연합회)라고 주장하며 맞고소를 벌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김씨 승소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버스 운전사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당일 내린 비로 버스 바닥에 물기가 있었는데,김씨가 버스에서 내리려다 물기가 있는 곳을 디디는 바람에 넘어졌다"며 "사고 때 김씨는 운동화를 신고 있어 특별히 미끄러져 넘어질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빗물 때문에 미끄러워진 버스 바닥이 운동화를 신고 있던 김씨 사고의 한 원인"이라며 "김씨의 사고는 자동차 운행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밝혔다. 탑승객이 비오는 날 미끄러지기 쉬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면 과실은 탑승객에게,운동화같이 '안전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면 과실은 버스에 있다는 취지다.

1심과 2심은 "버스 운전상 과실로 김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김씨 패소 판결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