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직업교육 강화해 고졸취업 늘려야
얼마 전부터 대학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일부는 '반값'을,다른 일부는 아예 '무료'를 주장한다. 대학 교육이 무슨 백화점 세일 품목이나 구호품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러고도 그들이 자칭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라니 대학의 장래는 물론 국가의 앞날이 심히 우려스럽다.

대학등록금이 일반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대학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다.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이 무려 90%에 육박한다.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인 유럽과는 판이하다.

전국적으로 4년제 대학은 200여개,2년제는 150여개,그리고 대학생 수는 약 35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가 대학생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제 더이상 '고등교육'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대졸 실업률'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노동시장에서 잉여 공급이 과다하다 보니 실업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고등학교에서의 진로지도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을 위한 지도도 중요하지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취업지도가 강화돼야 한다. 현재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계 고등학교는 보다 현장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며,이를 위한 산업체와의 연계 교육 혹은 실습 교육의 내실화가 절실하다. 스위스의 경우처럼,직업고등학교 수업을 전일제가 아닌 소위 파트 타임제로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현 정부가 교육부문에서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이스터 고교의 확대 및 보편화도 바람직한 대안(代案)이다.

이와 아울러 일반계 고등학교들도 미국과 같이 취업반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교 졸업반을 위해 충실한 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체제가 정비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학생들이 굳이 대학에 진학해서 고가의 등록금을 내고 장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경제적 자립을 영위함은 물론 이로 인한 사회적 자존감까지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교 교육을 대학 진학과 취업으로 이원화함으로써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만일 진학과 취업의 구분이 영구적인 것이라면 이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취업을 선택한 고교 졸업생에게도 대학의 문호가 개방되는 체제 아래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오히려 진로교육을 통해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관건(關鍵)은 학력 차별의 철폐다. 학력 차별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병적 현상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는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은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할 수 있다.

일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학력 차별에 대해 개탄하면서 "공직사회에서 고교 졸업자들의 취업을 늘려달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 기업은행,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 시작된 고졸채용 확대 바람은 LG,포스코,삼성전자 등 대기업으로 확산하는 분위기이다. 사실 공직에서는 꽤 오래 전에 학력 조항이 철폐됐다. 결국 공식적인 제도나 명문화된 규정보다 문화와 관행이 더 심각한 문제인 셈이다. 이를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고졸 취업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에 귀감(龜鑑)이 된다면 그 또한 학력 차별 분위기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고졸 사원들이 유수의 기업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끝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고 보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의사결정을 내려 달라고.

이성호 < 중앙대 교육학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