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골목마다 스며든 개항기의 흔적…붉은 거리 사이로 또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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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개항장과 월미도
대불호텔·일본제1은행지점…130년 前 서구식 건물 즐비
인천항·월미도 굽어보는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월미산 정상 일본신사 보니 침략당한 역사 떠올라
대불호텔·일본제1은행지점…130년 前 서구식 건물 즐비
인천항·월미도 굽어보는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월미산 정상 일본신사 보니 침략당한 역사 떠올라
일찍 세상을 알아 빨리 늙어버린 천재처럼 허름한 2층 슬래브 건물.인천역사(1960년)에 닿는다. 중국식 전통 대문인 제1패루(2000년)를 지나 응봉산(69m) 기슭 차이나거리로 들어선다. 1890년대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청국지계'는 여전히 붉은색으로 치장한 가게들이 화려하다.
◆살아 있는 근대를 만나는 '개항장 거리'
개항장 거리 초입에서 '목(目)'자형 2층 벽돌집(1908년)을 만난다. 1980년대 초까지 영업했던 중국 요릿집 공화춘이 있던 건물이다. 도원결의 장면 등이 그려진 삼국지 벽화거리를 지나 화교 중산학교(1901년),청국영사관 터를 둘러본 후 청 · 일 조계지 경계 계단에 닿는다. 이 계단의 좌우로 청 · 일본 조계가 갈라진다.
경계 계단 꼭대기에 심판처럼 서 있는 공자상을 지나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1883년)으로 들어선다. 한 · 미수교 100주년기념탑(1982년)에 들러 쌍안경을 들어야만 스타일이 살아나는 사나이 맥아더 동상 앞에 이른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의 추억을 곱씹으며 인천항과 월미도를 굽어보고 있다.
중구청 앞 옛 일본 조계지로 들어선다. 거리 첫머리에 벽돌식 3층 건물이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 대불호텔(1880년) 터가 있다. 1978년에 헐린 이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양탕국)를 선보였던 곳이다. 그 옆으로 옛 일본제1은행지점(현 개항박물관)과 옛 일본제18은행지점(현 근대건축전시관),옛 일본58은행지점(현 중구요식업조합)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르네상스풍의 작은 돔이 있는 옛 일본제1은행지점(1899년)은 처음엔 금괴와 사금을 매입하는 업무를 대행하다 점차 예금과 대출 등 은행 고유 업무를 담당했던 곳이다. 창문에 고전적 장식을 한 단층 건물인 옛 일본제18은행지점(1890년)은 금융 수탈의 첨병 노릇을 한 은행이다. 2층에 발코니를 둔 게 특징인 옛 일본58은행지점(1892년)은 인천전환국에서 주조한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을 목적으로 설치한 은행이다.
모더니즘 양식의 수수한 3층 건물인 중구청사(1933년 · 옛 인천부청사)를 돌아본 후 뒤쪽에 있는 인천 거주 외국인들의 사교 클럽이었던 2층 벽돌집 제물포구락부(1901년)로 올라간다. '끼리끼리' 문화의 발상지인 이곳엔 현재 영상 스토리텔링박물관이 들어섰다. 구락부 맞은편,고노 다케노스케의 별장(현 인천시역사자료관)은 거실을 돌출시킨 개량 한옥이다. 광복 후에는 댄스홀을 거쳐 인천시장 공관으로 쓰였는데 갖가지 나무들이 들어찬 정원이 매우 아름다운 집이다.
◆식민지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성당의 종소리
중국풍 5층 건물인 한중문화관(2005년)을 일별한 후 답동사거리 옛 인천우체국(1924년 · 현 중동우체국)으로 향한다. 총 면적 540평에 이르는 거창한 건물이지만 실용성에 치우쳐 무척 수수한 느낌이 드는 건축이다. 신포시장 건너편 언덕바지에 있는 답동성당(1937년)으로 올라간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의 중앙과 좌우 소철탑 상부에 얹은 돔 모양의 종탑 3개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1960년대까지 매일 낮 12시와 오후 6시에 어김없이 울려퍼졌다는 이 종탑들의 종소리는 식민지 치하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링뮤직(healing music)이었으리라.
화장품 · 구두 · 양장 등 첨단제품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개화기 얼리어답터들을 유혹했던 '신포 문화의 거리'를 지나 내리교회(1885년)로 향한다. 1901년에 지었던 십자가형 벽돌 예배당 대신 현대적 외관을 지닌 건물(1958년)이 나그네를 맞는다.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한국 최초의 교회당인 내리교회는 인천지역 최초의 사립학교인 영화학교를 세웠으며 1907년에 벌써 예배당의 남녀 칸막이를 없앤 '열린' 교회였다.
조계지를 만석동 방면까지 확장하려던 일본이 응봉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내기 위해 만든 홍예문으로 향한다. 화강암을 쌓아 만든 폭 7m,높이 13m의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문 공사 당시에 50여명의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다니 무지개문이 아니라 지옥문인 셈이다. 차이나거리로 돌아와 1893년께 세웠다는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중국 절이자 사당 의선당을 들여다본다. 용과 용두,잡상을 얹어놓은 지붕과 용왕 · 옥황상제까지 모셔놓은 법당이 매우 이색적이다.
오정희의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1979년)를 떠올리며 차이나타운 거리를 내려간다. 아홉 살 소녀인 '나'가 6 · 25전쟁 전후의 피폐한 시대적 공기가 흐르는 중국인 거리에서 양갈보인 메기언니,할머니 등의 죽음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당시처럼 베란다가 다닥다닥 붙은 목조 이층집들은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지금도 이 거리 어느 구석에서인가 한 소녀가 남몰래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는지 모른다.
◆월미도여,더는 못난 역사 때문에 아프지 마라
개항장 거리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것들은 설렘이 아닌 못난 역사에 대한 통증이다. 1920년대 초 육지에 편입된 둘레 4㎞의 월미도로 간다. 한산한 '월미 문화의 거리'를 뒤로 한 채 한국전통정원지구를 둘러본다. 창덕궁 후원,소쇄원 등 별서정원과 양진당 등 전통 민가 등을 재현한 곳이다. 내게 익숙한 공간들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양진당'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타고 월미산(108m)을 오른다. 정상 부근 아타고(愛宕)신사 자리에 이른다. 국권이 피탈되기도 전인 1908년에 벌써 이 산꼭대기에까지 일본 신사가 세워졌다니 놀라운 일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포 사격으로 내려앉은 부분을 흙을 채워 복원한 월미산 정상에 오른다. 남쪽을 바라보자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신도시를 잇는 총연장 18.38㎞의 인천대교가 지나고 있다. 다리 중간에 있는 무의도가 파묻혀가는 제 존재를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등을 돌리자 북항과 4420m의 영종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미친 존재감'을 뽐내는 거대한 구조물들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왜소함을 간질인다. 23m 높이의 유리전망대에 오르자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월미도는 도처가 전망대다. 처음 월미도에 들어왔던 서양인들이 '관측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진 '오브저베이션 아일랜드'라 불렀던 까닭을 알 만하다.
근대 이래 인천은 우리나라의 관문이다. 관문은 교류의 장을 여는 대문 역할을 하지만 침략의 직접적 통로가 되기도 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월미도는 그런 인천의 문고리 같은 곳이다. 그 때문에 인천항 개항 전후 외세의 각축으로 온갖 수난을 겪었고,일제강점기에는 군사기지로 이용됐으며 6 · 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지역이 돼야 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라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오른다. 암울한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신을 미안해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슬픔은 일종의 윤리의식이다. 그러나 오늘의 살벌한 국제화 시대에선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이다.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19세기 쇄국주의자의 피를 월미도에 버려둔 채 월미도를 떠난다. 부디 이 작은 섬에 더 이상 외세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기를….
담백한 삼족탕으로 몸보신
덕적도 · 자월도 · 풍도…배 타고 섬여행 즐겨 볼까
[맛집]
중구 경동 95-8,설렁탕 전문점 삼강(032-772-7885)은 60년 역사가 빚어낸 깊은 국물로 알려진 곳이다. 설렁탕 6000원,도가니탕 1만5000원.
중구 사동 23-12,선미정(032-764-9150)은 30여년간 우족에 인삼을 넣은 삼족탕으로 이름을 알려온 집이다. 우족 고유의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삼족탕 1만5000원.
[여행정보]
인천항연안여객선터미널(032-880-7530)에선 덕적도,자월도(이작도,승봉도),난지도(육도,풍도),백령도(소청도,대청도),연평도로 가는 배가 출항한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홈페이지(dom.icferry.or.kr) 참조.
용유도 을왕해수욕장은 평균 수심 1.5m 정도의 완만한 백사장이 700m가량 이어져 어린아이와 함께 가족 단위로 물놀이를 즐기기에 알맞은 해수욕장이다. 일찍이 국민휴양관광지로 개발돼 편의시설도 잘 갖춰진 데다 민박집도 많아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의 MT 장소로 그만이다.
해수욕장 뒤편으로 병풍처럼 숲이 펼쳐져 있어 해수욕에 지치면 쉬기 좋으며 해질녘이면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도 있다. (032)746-4112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