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는 곰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큰 곰과 맞닥뜨릴 경우 투어를 중지할 수 있습니다. '

시레토코고코(知床五湖)의 한글 안내 팸플릿은 큰 곰과의 만남을 설레게 했다. 1시간여의 산책을 마칠 때까지 흔적조차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일본의 대표적 겨울 관광지인 홋카이도(北海道)는 여름 휴가지로도 매력적인 곳이다. 제일 큰 장점은 서울보다 5도 이상 낮은 기온이다. 한국에서 2시간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점도 홋카이도 동부의 매력이다. 동부의 대표적인 지역은 오비히로 구시로 아바시리와 시레토코.농업과 목축업이 주된 산업이다. 삿포로를 통해 오비히로~아칸호~시레토코를 다녀왔다.

◆'땅이 끝나는 곳' 시레토코

홋카이도 동북부의 시레토코는 200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대부분 지역이 침엽수와 활엽수가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시레토코는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 말로 '땅이 끝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태평양과 러시아 쪽 오호츠크해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 70㎞,중앙부 폭이 25㎞인 가늘고 긴 반도.산 계곡 숲과 고산지대 해안이 풍요롭게 펼쳐져 있다.

시레토코 국립공원의 최대 관광지인 시레토코고코는 5개의 호수로 이뤄져 있다. 입구의 필드하우스에서 시작하는 탐방코스는 2개로 나뉜다. 일반적인 코스는 나무다리로 이뤄진 800m의 고가보도를 통해 제1호수까지 둘러보는 길이다. 2~5m에 이르는 고가보도를 통해 러시아로 이어지는 오호츠크해와 시레토코의 산봉우리들을 관람할 수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큰 곰의 출현에 대비해 나무다리 양쪽으로는 고압 전기철책이 둘러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상보도를 이용해 4개의 호수를 둘러보는 2.4㎞ 정도의 코스다. 불곰의 활동기(5~7월)에는 인솔자와 동행해 10명 단위로 2시간40분가량 돌아본다. 홋카이도 전역에 3000마리 정도의 큰 곰이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시레토코 인근에 서식한다.

◆'마리모'와 함께하는 아칸호 일주

아칸호는 1934년 지정된 홋카이도의 첫 국립공원이다. 아칸호를 비롯해 굿사루호 마슈호 일대 9만㏊를 포함한다. 아칸호 입구에는 아이누 마을인 아이누코탄이 있다. 아이누의 옛 가옥인 치세와 전통 수공예품을 파는 20여개의 상점이 있다.

아칸호 관광은 천연 마리모가 서식하는 주루이섬을 둘러보는 여행이다.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주루이섬에 내려 마리모 전시센터를 둘러보고 다키구치를 돌아온다. 마리모는 녹조식물인 클라도포라과의 일종으로 1897년 발견됐다. 1952년에는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끼와 비슷해 보이는 아칸호의 마리모는 특이하게도 동그랗게 뭉치는 특성이 있다. 번식과 성장 과정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신비의 생물이다. 마리모를 상품화한 캐릭터인 '마리못코리' 인형은 아칸호의 인기 상품이다.

칼데라호수인 마슈호는 물속 35m 깊이까지 들여다보인다. 러시아 바이칼호에 이어 두 번째로 맑은 호수라고 한다. 1년 중 3분의 2는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안개를 담은 캔을 매점에서 210엔에 판다. '뚜껑을 열면 꿈과 낭만이 순식간에 깨진다'는 경고문이 이채롭다.

◆미인을 만드는 온천과 '느림보 경마'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천이다. 홋카이도도 예외는 아니다. 호텔 어디를 가든지 온천은 필수다. 호텔 로비는 거의 일본식 가운인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홋카이도만의 독특한 온천도 있다. 모르(Moor)온천이라 불리는 도카치가와(十勝川) 지역의 온천은 식물성 온천이다.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갈대 등의 자생식물이 오랜 시간 퇴적한 석탄층에서 용출하는 온천으로 황토빛을 띠고 있다. 일반 온천에 비해 천연 보습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피부를 매끄럽게 하는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 미인온천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일본의 호텔 온천을 이용할 땐 객실에 있는 수건을 꼭 가져가야 한다.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욕탕에는 수건이 없다.

오비히로에서는 홋카이도만의 썰매경마를 즐길 수 있다. 보통의 경마는 500㎏ 정도의 날렵한 말로 달리지만 반에이경마의 경주마들은 2배 정도 덩치가 크다. 500㎏에서 1t에 가까운 '썰매'를 끌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이 필요하다. 200m 직선을 달리는 동안 두 개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정해진 트랙을 도는 일반 경마와 달리 반에이경마의 기수는 언덕을 넘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언덕을 넘을 때와 결승점을 향해 달릴 때는 마구 채찍을 휘두른다. 조금은 잔인한 측면도 있다. 반에이경마는 스피드가 아닌 힘을 겨루는 '느림보 경주'다. 오비히로 인근에는 4대에 걸쳐 가꿨다는 마나베정원,홋카이도산 자작나무 모양을 본뜬 '산보로쿠케이크'로 유명한 과자회사 류게쓰가 있다.


◆ 여행 팁

대한항공이 인천에서 신치토세와 하코다테,부산에서 신치토세 구간을 운항하고 아시아나항공은 인천에서 아사히카와까지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신치토세까지는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홋카이도 동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구시로 공항이 가장 가깝지만,정기편은 없고 전세기만 운항한다. 동부를 여행할 때는 철도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넓은 지역이다 보니 이동거리가 길고 철도망도 잘 짜여져 있다.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인 에키벤도 맛볼 만하다. 서울과 같은 시간대를 쓰는 홋카이도에서는 오전 4시만 돼도 대낮이다. 그러나 태양만 하루의 시작을 서두를 뿐 사람들의 생활이 빨라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홋카이도=심재문 기자 ps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