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주일 사이에 전 세계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2000조원가량이 증발했다. 공포감이 시장을 지배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다. 당시는 리먼브러더스의 부도를 불러온 모기지론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국가 부도의 위험이 거론된다. 정부의 경기 부양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기업들의 실적은 양호하다는 점은 2008년과 다르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3년 전에 비해 크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고 지적한다.

◆수단 없는 정부

2008년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가 연속으로 부도나자 각국 정부는 신속히 위기 진화에 나섰다. 통화 재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높은 금리와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부재정이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기준금리는 각각 연 5.25%와 4.5%였다. 위기가 터지자 각국 중앙은행은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도산 때 앨런 그린스펀이 썼던 금리 인하의 처방전을 들이밀었다. 연속적인 금리 인하로 위기 악화를 막았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정책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기준금리는 각각 연 0.25%와 1.5% 수준이기 때문에 내릴 여력이 별로 없다. 물가도 여전히 부담이 되고 있다.

재정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말 미국의 재정적자는 2000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듬해 위기가 발생하자 미 정부는 각종 정책을 동원,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 말 미 재정적자 규모는 1조4000억달러로 불어났다. 최근 정부 부채 한도 조정협상에서 재정지출을 더 줄이기로 했다.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사실상 거의 없어진 셈이다. "리먼사태는 더 큰 위기인 2011년 위기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사건일 뿐이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규모가 다르다

2008년 위기의 원인은 모기지론이었고 타격은 은행들이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들이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 부문으로 위기가 번진 형국이다. 유럽의 재무자문사인 나틱시스의 실뱅 브로이어는 "당시 위기는 은행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여기에 국가 부도의 위기가 겹친 셈"이라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때와의 차이점은 사건 당자사들이 훨씬 많다는 것"(사이먼 데릭 뉴욕멜론은행 애널리스트)이란 지적이다.

위기의 심각성은 그동안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위기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분석가는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를 살릴 수 있는 돈의 몇 배를 유럽지역 구제금융에 썼지만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 실적은 양호

또 다른 차이는 기업들의 실적이다. 미국 기업들의 실적은 2007년 정점을 찍고 리먼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2분기 미국 전체 기업의 60% 이상이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내놓고 있다. 제조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실적이 주가 방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업 이익이 정점을 찍고 장기 하락세를 보였던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때와 비슷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주가 측면에서는 2008년 10월에 비해 아직 낙폭은 작다. 다우지수가 급락했던 2008년 10월엔 주가가 500포인트 이상 떨어진 날이 5일이나 됐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