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5일 조세연구원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방안의 위헌 소지가 높다는 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했다.

일감 몰아주기의 병폐는 공정거래법이나 상법 등 현행 법체제 안에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헌법 기본권 침해…위헌 소지 높아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주가 상승분에 대해 상속 · 증여세를 과세하는 1안은 주가 상승 자체가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이득에서 온 건지 아닌지를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다"며 "설사 그 이득을 입증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과세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도 "단순 물량 몰아주기는 규모의 경제를 얻기 위한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봐야 한다"며 "얼마 전 문제가 됐던 유성기업도 현대차 납품 물량의 60~70%를 공급하고 있는데 현대차가 과연 유성기업에 과도한 이익을 주기 위해 그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미 2007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단순히 물량을 몰아준 것에 대해서는 과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역시 "헌법에서는 국민의 재산권을 엄격히 보장하고 있다"며 "특히 미실현이익에 대해 과세를 한다든가 과거 행위에 대해 소급해 세금을 매기는 것은 조세 원칙에 위배될 뿐더러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연구소장도 "일감 몰아주기 전체를 기부나 증여 행위로 본다면 위헌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우연이득세(windfall profit tax)'와 같은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기존 법으로도 충분

전문가들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문제가 있다면 공정거래법이나 상법 등 현행 법체계 내에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현석 조사본부장은 "공정거래법의 부당 거래 금지 조항이나 상법상 주주대표소송 등 각종 장치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이 같은 문제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조세 원칙에도 맞지 않는 과세 방안을 굳이 정부에서 도입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상근 경제본부장도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의 경우 계열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지만 보안 문제와 관련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이 같은 업종별 특성을 무시한 채 입법이 강행될 경우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과세 방안을 지지하는 이전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공정거래법이나 상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실효성이 약한 측면이 있다"며 "주가 차익에 대해 상속 증여세를 과세하되 위헌 논란을 낳지 않도록 법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호기/서보미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