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년 7월 현재 국내에 있는 증권사들은 62곳에 달한다. 이 중 외국계 증권사는 20곳이다.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작년(2010 회계연도)에 외국계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은 4080억 원 수준이다. 나머지 42개 토종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 2조4074억 원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외국계 증권사들이 보이고 있는 높은 생산성이다. 올 3월 기준 토종 증권사의 임직원 수는 4만1853명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의 임직원 수는 1772명에 불과하다. 즉 토종 증권사의 직원 한 명이 1년에 5700여 만 원을 벌어들인다면 외국계 증권사 직원 한 명은 1년에 무려 세 배가 넘는 2억3000여 만 원을 벌어들인다는 뜻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재무 안정성 역시 토종 증권사의 두 배 수준이다. 2011년 3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NCR(Net Capital Ratio: 영업용순자본비율) 평균은 514.5% 수준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의 NCR는 토종 증권사의 두 배 수준인 1013.4%에 달한다.


◆소수 정예의 탄탄한 고객층 ‘주목’

실제로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증권사의 리스크 관리능력은 최근 몇 년간의 당기순이익 추이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2007년 토종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3조5939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계 증권사 역시 8360억 원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던 2008년 국내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1조3269억 원으로 1년 새 반 토막 이상 쪼그라들었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7710억 원으로 600억 원가량 줄어드는데 그쳤다.

이처럼 외국계 증권사의 높은 생산성과 뛰어난 재무적 안정성은 바로 소수 정예의 탄탄한 고객층에서 나온다. 즉 한국 상장기업 주식의 30%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이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적게는 수조 원에서 많게는 수백조 원을 주무르는 ‘글로벌 큰손’, 즉 외국계 기관들이다. 2004년 금융감독원이 외국계 증권사들의 위탁 매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외국계 증권사의 위탁 매매 거래액 중 85%가 외국계 기관이었다.

외국계 기관들은 글로벌 수준에서 국가별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이 때문에 외국계 기관은 한국 기업의 주식을 사기 위해 국내 증권사에 주문하기도 하지만 편의상 주문의 대부분 본사가 거래를 많이 하는 증권사의 서울 지점에 주문하는 게 대다수다.

실제로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럽계 증권사인 크레디트스위스·UBS·BNP파리바 등은 주로 유럽계 자금이, 미국계 증권사인 골드만삭스·메릴린치·모건스탠리는 미국계 자금이 주로 드나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는 유럽계 증권사에서 매수 주문이 나면 ‘단기 투자’로, 미국계 증권사에서 매수 주문이 나면 ‘장기 투자’로 유추하기도 한다. 이유는 유럽계 자금은 주가의 수학적 분석에 의한 ‘치고 빠지기’ 성향이 있으며 미국계 자금은 기업 가치 위주로 ‘묻어두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국내 기업에 대해 과감히 ‘셀(sell)’ 리포트를 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외국계 증권사가 소수의 큰손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토종 증권사는 고객층이 불특정 다수여서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돼 쉽게 ‘주식을 팔라’는 리포트를 내기가 쉽지 않은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소수 기관 고객들의 투자 수익률만 올릴 수 있다면 ‘팔아라’라고 권유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 증권사의 수수료율은 토종 증권사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이유는 외국계 증권사의 주 고객층인 기관들은 온라인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계 증권사들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 개인들은 주로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등을 통해 주식거래를 하기 때문에 수수료율이 매우 낮다. 즉 다수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며 비용을 높이기보다 소수의 고객에게 집중해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2004년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외국계 증권사와 토종 증권사의 수수료율 차이는 평균 약 0.1%나 차이가 났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이처럼 안정적 고객 기반과 함께 ‘한방’도 가지고 있다. 바로 기업공개(IPO), 기업 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IB) 업무다. 한국경제신문과 연합인포맥스가 올 초 발표한 ‘2010 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메릴린치는 각각 9165억 원, 7638억 원, 7638억 원의 IPO 실적을 올렸다. 증권사의 IPO 수수료율을 1%라고 가정한다면 각사들이 적게는 700억 원에서 많게는 900억 원의 IPO 수수료를 벌어들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천문학적인 IPO 금액이 각 사 모두 단 한 건의 거래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참고로 대우증권은 모두 11건의 IPO를 주관했는데 금액은 6251억 원 수준이었다.

M&A 재무 자문은 외국계 증권사의 텃밭이다. 실제로 작년 M&A 재무 자문 상위 5개사 중 국내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참고로 메릴린치 6조4262억 원(1위), 모건스탠리 4조9275억 원(2위), 삼정KPMG 3조9831억 원(3위), 골드만삭스 3조1579억 원(4위), 맥쿼리 1조9727억 원(5위) 규모의 M&A 재무 자문을 했다. 삼정KPMG가 회계법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M&A 재무 자문은 외국계 증권사가 독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외국계 증권사 역시 한국 증권업계에서 살아남기가 호락호락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유는 토종 증권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외국계 증권사들 역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회계연도 토종 증권사들은 전년도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1366억 원 정도 줄어들었다. 여기에 지난해 몇몇 토종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 중 지분 매각, 소송 승소, 사옥 매각 등으로 약 5400억 원의 일회성 이익을 본 것을 감안하면 전년 대비 무려 7000억 원 정도나 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전년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240억 원 정도 줄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가 법인세 610억 원을 추가 납부해 369억 원의 적자를 낸 것을 따져보면 토종 증권사의 실적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글로벌 기업들의 회계기준상 국내에 신고하지 않은 이익을 더한다면 실제는 더 많을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 나타나

하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외국계 증권사들 사이에서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크레디트스위스는 작년 1089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토종 증권사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대신증권(844억 원)보다 200억 원가량이나 많고 신한금융투자(1096억 원)와 거의 맞먹는 순이익이다.

반면 20개의 외국계 증권사 중 6개의 외국계 증권사는 적자를 냈다. 일회성 요인이 있었던 골드만삭스를 제외해도 5개의 증권사가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국내 증권사는 40개 중 6개가 적자를 기록했다. 몇몇 외국계 증권사는 국내 증권사의 평균 NCR에도 못 미치는 300% 수준의 NCR를 보이고 있다. 금융 위기 전인 2007년 18개의 외국계 증권사 중 단 한군데만 10억 원가량의 당기순이익 적자를 내고 모두 흑자를 냈던 것을 돌이켜본다면 금융 위기 이후 몇 년 새 외국계 증권사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18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