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에 있는 태승물류(대표 조성호ㆍ61)에 들어서면 수많은 문구ㆍ스포츠용품 완구 등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지구본 복사지 견출지 캐릭터 문구 제품부터 축구공 배구공 아령 만보계 바둑 장기 풍선 등 만물상이다. 무려 2만여종에 이른다. 이곳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생활용품 할인점 등을 비롯해 문구점 완구 소매업체들이 찾는다. 한곳에서 거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조성호 사장은 자전거 행상에서 스포츠용품과 문구 거상으로 클 수 있었을까.


태승물류의 한쪽 구석에는 플라스틱 사출기가 있다. 돼지저금통을 찍어내는 설비다. 그 옆에는 돼지저금통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노란색 빨간색 황금색 등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돼지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돼지저금통은 조 사장이 자녀들을 양육한 밑거름이 된 제품이다. 조 사장이 고정 거래처만 300곳이 넘는 문구 · 스포츠용품 · 완구 유통의 거상으로 자리잡은 자양분이기도 하다. 도대체 싸구려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이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1981년 추운 겨울.서울 가리봉동에 짐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도착한다. 부려진 짐은 작은 뒷골목 가게에 가득 찬다.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이다. 작은 완구점을 하는 조 사장은 아내에게 가게를 맡겨두고 이를 자전거에 싣고 팔러다녔다. 이때가 30대 초반.그는 서울 성수동 공장에서 실려온 돼지저금통을 시흥 광명 인천 등지로 다니며 팔았다. 자전거 행상인 셈이다.

충남 조치원에서 태어난 조 사장은 농사를 짓는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장남이었다. 그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10대 후반 상경해 서울 구로동 디자인포장센터 공장에서 박스 만드는 일을 했다. 비록 자신은 집안 사정 탓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막내 동생을 서울대에 보내기도 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대통령표창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10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독립했다. 내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 시작한 게 완구점이다. 하지만 뒷골목에 있는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여서 경쟁력이 없었다. 이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돼지저금통 행상에 나섰다. 완구점은 얼마 안 돼 폐업했다. 조 사장 자신은 자전거에 돼지저금통을 싣고 문구점 등을 찾아다녔다. 온 가족의 생계가 달린 플라스틱 저금통은 무겁진 않았지만 부피가 컸다. 트럭이 쏜살같이 옆을 지나갈 때는 자전거가 바람에 휘청거렸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길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안양에서 저금통을 판 뒤 시흥의 고개를 올라올 때는 페달을 밟을 힘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돼지저금통은 서민들의 저축 수단이었지요. 큰 저금통에는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갔고 요긴할 때 잡아서 쓰기도 했지요. "

장사가 점차 번성하자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바뀌었다. 이후 1t 트럭 행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 많은 문구점을 단골로 둘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납기 준수'와 '상생'이었다.

돼지저금통은 연말에 수요가 많은 상품이다. 새해가 되면 낭비를 줄이고 알뜰히 살며 저축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연말에 주문이 몰리게 마련이다. 그는 어김없이 제 날짜에 배달해줬다. 문구점은 아침에 분주하다. 학생들이 학교 가는 길에 들르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 일찍 배달에 나섰다. 이때 아침에 태양이 붉게 떠오르면 가슴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사명을 '태승(太昇)'으로 정한 것도 '태양이 솟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때 정해둔 것이다.

아울러 상생을 생각했다. 만약 소매가격 100원짜리 돼지저금통을 자신이 50원에 떼어오고 이를 60원에 도매상에 납품한 뒤 도매상이 70원에 소매상에 공급하는 구조를 생각해보자.자신은 도매상에 60원에 납품해야 가장 많은 이윤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55원에 납품했다. 그러면 도매상은 소매상에 좀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소매상 역시 소비자에게 할인해줄 수 있다. 마진을 조금 덜 챙기더라도 도 · 소매점 · 소비자와 상생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도매상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신뢰를 쌓았다. 1992년 태승물류를 창업했다. 1996년에는 좀 더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사출기계를 들여놓고 돼지저금통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원료를 넣은 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이 바람을 주입하면 금속틀 안에서 뚱뚱한 돼지저금통이 만들어져 나온다.

"도 · 소매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니 이들이 더 팔아줄 테니 다양한 아이템을 취급하라고 독려하더군요. "

그래서 조 사장은 거꾸로 문구점에 어떤 물건을 구해다주면 좋을지 물었고 그대로 하나씩 상품을 늘려 나갔다. 취급 상품이 돼지저금통 1개에서 지금은 문구류 스포츠용품 학습교재 완구류 등 2만여종으로 늘어나며 거상으로 발돋움했다. 이때 고객 중심 경영을 터득했다. 이런 과정에서 사업장소도 가리봉동에서 구로동 독산동 신림동 광명으로 점차 확장 이전했다.

문구는 연필 색연필 스케치북 포스트잇 지구본 견출지 앨범 컬러용지 화이트보드 등을 다룬다. 스포츠용품은 축구공 배구공 배드민턴 탁구 및 테니스용품 아령 역기 악력기 물안경 킥보드 줄넘기 체육복 등을 취급한다. 학습교재는 수수깡 찰흙 멜로디언 실로폰 리코더 단소 소고 장구 탬버린 하모니카 트라이앵글 등을,완구류는 바둑 장기 손난로 등이다.

30년간 사업을 하면서 변하지 않은 경영철학은 바로 상생과 고객 중심이다. "상생은 도매상 · 소매상 · 고객과 더불어 살자는 의미"라며 "구체적으론 혼자만 많이 남기지 말고 조금씩 양보해서 골고루 먹고 살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고객 중심 경영의 개념도 간단하다. "고객이 해달라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이런 제품을 취급하니 팔아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제품을 공급해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게 바로 고객 중심 경영"이라고 조 사장은 설명한다. 이를 통해 창조적으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돼지저금통을 취급해도 남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조 사장은 "지금은 은행 지점이 많이 생겨 저금통에 저축을 하는 사람이 줄었지만 어릴 때부터 근검 절약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데 저금통만한 게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매일 한푼 두푼 저금하면 나중에 학자금으로 유용하게 쓸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돼지는 풍요와 복의 상징이다. 자기가 취급한 돼지저금통을 산 사람들이 알뜰하게 저금해서 작은 밑천을 만드는 것을 볼 때 뿌듯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복을 받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엔 작업복 차림으로 아내와 함께 매장을 분주히 오가며 주문을 받고 트럭에 물건 싣는 것을 도와준다. 그의 물류창고 앞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곳에는 '고객과 더불어 먹고 살자'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를 매일 쳐다보면서 사업의 의미를 되새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