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 받으러 올라온 서류들마다 상황에 대한 장황한 설명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움직이자'는 결론이 없었어요. "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58)이 처음 취임했던 2009년 6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하는 말이다. 덩치 큰 조직에서 나타나는 '보신(保身)주의'가 직원들 사이에 팽배했다는 얘기다.

황 사장은 임 · 직원들의 보신주의를 깨기 위해 취임 이후 직원들의 귀에 못이 박힐만큼 '1등주의'를 강조해왔다. 유명세를 탄'우리투자증권에는 1등이 참 많습니다'라는 카피라이트는 황 사장이 직접 선택한 것이다.

취임 3년차에 접어들면서 그 결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투자은행(IB) 부문의 약진이 눈에 띈다. 기업공개(IPO)와 채권 인수 등 대부분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증권업계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황 사장은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글로벌 IB 육성의 정부 의지를 확인한 상황에서 우리투자증권이 보여주고 있는 성과는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세일즈 · IB · 트레이딩 3개 분야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종합 1등 금융투자회사'가 우리투자증권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IB부문 '대약진'

한국경제신문이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상반기 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서 우리투자증권은 IPO 주관 · 채권 인수 · 주가연계증권(ELS) 발행 3개 부문에서 지난 상반기 1위(금액 기준)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투자증권은 IPO 주관 부문에서 지난해 연간 종합 7위에서 올 상반기 1위로 수직상승했다. 상반기 가장 규모가 컸던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하이마트의 주관사를 맡은 덕분이다. 우리투자증권은 6921억원 규모(8건)의 IPO 주관을 맡았다.

채권인수 부문에서는 4조9212억원 규모의 인수실적으로 1위에 올랐다. 일반 회사채 인수영업에 주력한 결과로 풀이된다. ELS 발행부문에서는 상반기 2조7235억원 규모를 발행해 1위로 올라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이 지난 3월 있었던 중국고섬 사태 등 다양한 이유로 IB부문에서 주춤하는 사이 우리투자증권이 치고 올라갔다"며 "IB부문에서의 경쟁력은 자산관리 분야의 상품개발 역량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증권사 전반의 경쟁력 제고에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IB' 변신 준비도 착착

정부는 글로벌 IB 육성을 목표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회사에 △기업대출 △비상장주식 등의 내부주문 집행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허용하는 게 골자다.

이 가운데 핵심은 연내 1호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형 헤지펀드에 제공될 프라임브로커 업무다. 프라임브로커 업무는 헤지펀드에 대한 거래와 집행,결제 뿐 아니라 유가증권 대여와 신용공여 수탁 및 리스크 관리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통해 증권업계가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수익규모는 오는 2014년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투자증권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곧바로 프라임브로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다. 2007년 주식대차업무를 시작했고 2009년에는 프라임서비스그룹 안에 에쿼티 파이낸스(equity-finance)팀과 해외파생영업팀 2개 부서를 둬 주식대차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업계 최초로 주식대차를 비롯한 일부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진행했고 실적도 우수하다"며 "금융감독당국의 헤지펀드 도입 일정에 맞춰 다양한 추가업무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상위 5~7개 사업자가 프라임브로커 업무라는 신규 수익원을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며 "기존 트랙 레코드를 감안할 때 IB부문 경쟁력이 돋보이는 우리투자증권이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산관리 부문도 강화

금융투자업계에서 주식거래 업무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리지 부문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대신 펀드와 랩 어카운트 판매 수수료 등으로 구성되는 자산관리 부문 수익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상품에 강점을 가진 삼성증권이 증권업종 내 종목들 가운데 가장 비싼 주가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런 추세에 맞춰 자산관리 부문의 경쟁력 강화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한국메릴린치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통째로 사들인 것은 자산관리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동안 증권업계에서는 외국계 증권사 출신 PB팀장들을 여럿 영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PB센터 전체를 인수한 경우는 없었다.

우리투자증권이 인수한 메릴린치 PB센터의 자산규모는 1조원 정도다. 여기에 우리투자증권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PB센터 '프리미어블루'의 자산을 합치면 약 3조원에 이른다. 김지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릴린치 PB부문 인수에 따른 자산관리 부문 경쟁력 강화로 2011회계연도 2분기 이후에는 실적 개선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