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 너무 많으면 결정 포기…고객에 제품 제시 방식 바꿔야
주의할 점이 있다. 최대 숫자가 3일 때는 원활하게 진행되던 게임이 5로 바꾸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잠깐만!'을 연발하며 얼마까지 부를지 쉽게 정하지 못한다. 선택의 범위가 작으면 쉽게 마음을 정하지만,범위가 넓어지면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배스킨라빈스 31'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기분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 보는 31가지 종류의 맛,그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다. 뭘 골라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있다. 몇 번 경험하고 나서야 선호하는 아이스크림이 생겼고,그 이후에는 줄곧 그 선택으로 일관하게 됐다.
경제학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마치 '베스킨라빈스 31' 게임처럼 사람들은 선택권이 많아지면 오히려 결정을 못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멘로공원 근처의 한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2주간 실험이 진행됐다. 첫 주 주말에는 6가지 종류의 잼을 전시하고 시식하도록 했다. 다음 주말에는 24가지 종류의 잼을 전시하고 시식하게 했다. 경제학의 이론이 맞았을까. 6가지 종류가 전시된 주말보다 24가지 종류가 전시된 주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여기까지는 경제학의 예측 그대로다. 구매도 그럴까. 6종류 시식에 참여한 사람 중에서는 30%의 사람들이 잼을 구매했다. 그러나 24종류 시식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는 3%만이 잼을 사갔다.
이처럼 선택권이 너무 많을 때에는 판단력이 마비되거나,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되고,아예 결정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일컬어 '선택의 패러독스(paradox of choice)'라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해 모든 상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된 요즘은 선택의 패러독스에 빠지기 쉽다.
선택의 패러독스를 풀어준다면 기업들에 어떤 기회가 있을까. 2010년 미국 컨슈머리포트 햄버거부문에서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한 인앤아웃이 한 예다. 이곳에는 달랑 4가지 메뉴만이 있다. 햄버거,치즈버거,더블더블버거,프렌치프라이.다른 메뉴를 개발할 자원을 오로지 맛과 품질 개선에만 집중,고객들을 만족시킨 것이 성공 비결이다.
시카고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앨리니아(Alinea)는 식사하러 온 고객에게 두 가지 선택권만 준다. 15가지의 요리가 조금씩 제공되는 코스와 25가지 요리가 더욱 조금씩 제공되는 코스가 그것이다. 고객들은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음식 맛을 음미한다.
기업에서도 선택의 패러독스를 활용할 수 있을까. 지금 가진 다양한 제품들을 폐기하고 줄여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다. 분명 고객들은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제품만으로는 모든 고객을 충족시킬 수 없다. 선택의 패러독스가 주는 교훈은 고객에게 제품을 제시하는 방식을 바꾸라는 의미다.
아마존의 제품 제시 방식은 여러 기업들에 선택에 대한 교훈을 준다. 한 분야에 수많은 제품들이 존재하는 서점.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보고 마음을 정하지만,온라인 서점은 이게 어렵다. 어떻게 책을 골라야 할까. 아마존은 이런 고객을 위해 두 가지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는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여주는 것이고,또 하나는'바로 지금 당신이 보는 책을 산 고객들이 이 책과 함께 구입한 책' 목록이다. 고객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구입한 책이라면 나도 참고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결정이 쉬워진다.
고객이 물건을 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을 경우 고객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계평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