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건양대 총장…총장 오빠ㆍ형님으로 불리길 바라는 '83세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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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매니지먼트
인물 탐구…김희수 건양대 총장 "김안과로 번 돈 멋지게 쓰고 싶다" 대학 설립
기상시간 새벽 3시30분
매일 1만2000보 이상 걸으며 응급실·구내식당까지 '시찰'
시험기간 도서관에 빵·우유 배달
학생 위해선 통크게 쓴다
한 해 장학금만 120억원
"공부 싫으면 운동이라도 해라"…150억원 들여 첨단 체육관
인물 탐구…김희수 건양대 총장 "김안과로 번 돈 멋지게 쓰고 싶다" 대학 설립
기상시간 새벽 3시30분
매일 1만2000보 이상 걸으며 응급실·구내식당까지 '시찰'
시험기간 도서관에 빵·우유 배달
학생 위해선 통크게 쓴다
한 해 장학금만 120억원
"공부 싫으면 운동이라도 해라"…150억원 들여 첨단 체육관
김희수 건양대 총장은 캠퍼스를 돌다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학생을 만나면 "집에 돈이 없어? 내가 새 옷 한 벌 사줄까"라고 불러세운다. 김 총장을 알아본 학생은 "아닙니다.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올게요"라고 물러선다.
충남 논산의 건양대와 대전 가수원동의 건양대병원을 이끄는 김 총장은 83세의 최고령 총장이다. 매일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3시반에 깨어 보통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 일한다. 그래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챙길 게 많아서다.
그는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집에서 10분 거리인 병원에 걸어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환자 간호는 잘 이뤄지는지,응급실은 24시간 빈틈 없이 가동되는지를 직접 확인한다. 귀가 후 잠시 눈을 붙이고 식사를 마친 다음 7시30분에 '2차 출근'.10시께는 논산 캠퍼스를 누비며 학사관리는 엄정한지,구내 식당은 점심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교정의 담배꽁초도 줍고 안대를 쓴 학생이 지나가면 즉석 진료에 나서기도 한다. 시험기간엔 새벽에 도서관을 돌며 빵과 우유를 돌린다. 청소상태가 불량하면 그 자리에서 직원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김 총장은 수첩을 갖고 다니며 수시로 개선사항을 메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80대 현역'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절제된 생활과 분명한 목표 의식이 김 총장을 쉼 없이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전봇대에 광고전단 붙여 김안과 알려
김 총장은 논산시 양촌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의 혹독한 보릿고개도 그의 집안은 겪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굶주린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이 먹을 밥을 갖다주는 자비로운 분이었다고 김 총장은 술회했다. 그는 공의(公醫)였던 형의 영향을 받아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선진의술을 배우러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56년이다.
안과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했다. 꼼꼼한 그의 성격과 딱 들어맞아서다. 뉴욕 세인트프랜시스병원과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안과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1962년 영등포시장 로터리에 김희수 안과의원을 냈다. 전봇대에 광고 전단을 붙이고 '미국에서 최신 의술을 배우고 왔다'며 홍보전을 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눈이 불편한 것은 다들 참고 살았죠.어쩌다 수술해야 할 환자가 찾아와 공들여 진단해 놓으면 수술은 '공안과'에서 받겠다며 옮겨가기 일쑤였죠.그래도 실력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4년 후부터는 좋아졌죠."
그가 큰 돈을 번 건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다. 산재(産災)로 눈을 다친 영등포공단 근로자들이 줄을 이었고,의료보험이 확대되면서 환자가 폭증했다. 유명세를 타자 10여명의 의사가 하루에 2500~3000명의 환자를 봤다. 한창 돈을 벌 때는 은행원이 찾아와 부대 자루에 담긴 돈을 셌다. 안과전문병원의 효시가 된 김안과는 지금도 연간 42만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국내 전체 안과 수술의 5%,망막수술의 20%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고향사람 성화에 교육사업 시작
1980년 고향사람들이 찾아와 "서울에서 큰 돈을 벌었으니 폐교 위기에 처한 고향 중학교를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교육엔 관심이 없다"고 뿌리치던 그는 결국 건양중 · 고교를 설립했다. 고향에도 대학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여론에 1991년에 건양대를, 2000년엔 건양대병원을 세웠다.
김 총장은 "학교 대신 호텔이나 리조트를 지었으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돈을 멋지게 쓰기 위해 학교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으로 시끄러운 요즘 건양대는 학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3년 연속 등록금을 동결했다. 연간 등록금은 평균 693만원으로 사립대 최저 수준.건양대는 등록금 등 자체수입은 700억원 수준이지만 건양대병원 수익을 포함한 재단전입금 70억원,김안과병원 기부금 50억원 등 280억원을 보태 학교예산으로 쓰고 있다. 장학금으로 연간 120억원을 쓴다.
교내 서류는 반드시 이면지를 써야 하고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김 총장이지만 학생을 위해선 통 크게 돈을 쓴다. 올 4월엔 150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3층,연면적 8980㎡ 규모로 첨단 시설을 갖춘 체육관을 지었다. "수영을 뺀 모든 운동을 즐길 수 있어요. 가급적 모든 것을 학교 안에서 해결하란 뜻입니다. 공부하기 싫은 학생은 학교에서 운동이라도 해야죠."
◆무한책임주의로 '실용'교육
건양대는 '입학하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모토로 2003년부터 7년 연속 90% 이상 취업률을 달성했다. 비결은 거의 모든 학과의 명칭과 커리큘럼을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개편한 것.올해 신설된 의료공과대의 경우 의공학부 의료IT공학과 의료건축디자인공학과 제약생명공학과 등 여러 학문을 접목한 특화 학과들로 구성돼 있다. 이 밖에 세무학과 국방경찰학부 특수교육과 심리상담치료학과 예식산업학과 공연의상학과 등 취업이 잘되는 학과가 즐비하다.
"기업들이 지방대생이라고 잘 뽑아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취업을 보장할 수 없어요. 건양대 출신 졸업생을 뽑아간 많은 수도권의 중소기업들이 계속해서 고용을 의뢰해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실용적인 교육을 한다는 얘기겠지요. "
건양대는 입학 후 한 달 동안 '동기유발 학기'를 운영,학교 선배 · 기업체 임원 · 유명인으로부터 4년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취업진로를 정하는 모티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오후 5시30분 이후엔 3시간 동안 취업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일종의 과외수업인 셈이다.
건양대는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선정됐다. 교수들은 휴강하려면 사전에 총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차후에 이뤄지는 보충수업도 엉성하게 했다간 경고를 받는다. 자기전공이 아니라고 임시강사를 함부로 불러쓰는 것도 금물이다.
교수들은 방학 기간 4주간 연수교육을 받는다. 개설된 학과 대부분이 여러 학문을 접목한 것이기 때문에 순수 단일 학문을 전공해온 교수들은 이종학문을 배워야 한다. "방학 동안 열심히 배운 것을 학기 중에 잘 가르치라"는 게 김 총장의 지침이다.
◆100살까지 총장할 것
"인생에 정년은 없다. " 김 총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총장을 맡을 작정이다. 그는 학생들이 '총장 오빠''총장 형님'이라고 불러주면 "더욱 열심히 해달라"는 '파이팅'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건강도 왕성하다. 28개 치아가 모두 자연니로 음식을 꼭꼭 씹어 먹을 수 있다. 40년 전 독한 마음으로 단번에 담배를 끊었고 가계(家系) 특성상 술도 잘 마시지 못한다. 학교와 병원을 오가며 매일 1만2000보를 걷는다. 기억력도 젊은 직원들보다 생생해 보필하는 사람들이 애를 먹는다.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은 건양대는 중부권의 취업 잘되는 명문사학으로 키울 겁니다. 건양대병원은 인구고령화와 의료서비스 수요 증가,대전 지역 환자의 수도권 유출방지에 대비해 인프라를 더욱 확충할 계획입니다. " 건양대병원은 다음달 400억여원을 투입한 연면적 1만㎡ 안팎의 암센터를 문 연다. 김 총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태세다. 병원 앞 9만9000여㎡ 부지에 제2병원을 신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 막대한 건축비를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까. '100세 총장'을 꿈꾸는 그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