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정도다. 사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과거에 실패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재탕이고 잘못된 제도다.

처음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할 때 중소기업법상 대기업을 기준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논란이 일자 대기업 기준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기준이나 중소기업법 기준이나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식품 분야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두부 시장을 보자.공정거래법 기준으로 대기업을 분류하면 CJ제일제당은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반면,풀무원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게 된다. CJ제일제당의 빈자리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풀무원 등 또 다른 식품 대기업에 돌아갈 공산이 크다. 중소기업을 살리자고 만든 제도가 특정 대기업만 밀어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중소기업법 기준으로 대기업을 분류해 CJ제일제당과 풀무원 양사가 모두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 현실적으로 최소 수천억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중소 두부업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결국은 해외 다국적 기업이 사업을 인수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해당 사업을 폐쇄한다면,수천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의 고용문제 또한 중소 두부업체가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이 정책은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우리 시장을 해외 기업에 내주게 되고 실업만 증가시키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 대기업들은 연구개발(R&D)과 위생관리로 가내 수공업 단계의 두부사업을 산업화해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데 일조해 왔다. 또한 풀무원은 이미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CJ제일제당은 베이징 두부시장에 진출해 시장 점유율 70%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한식의 글로벌화라는 비전 아래 성과를 보이고 의욕적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대기업의 사업 제한은 이제 막 피어나는 한식 글로벌화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고,소비자의 안전한 먹을거리 선택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금형(金形)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금형기술은 첨단 디자인을 보다 유려하게 실현하기 위해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뚜렷한 비전을 가진 애플은 여타 분야에 대해서는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지만,금형에 대해서만은 자체 생산을 고집해 오늘날의 애플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일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은 기존의 공정거래법으로 제한하면 된다. 하지만 두부나 금형의 예처럼 글로벌 사업 확장이라는 명확한 사업목표나 제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장기적 비전을 갖고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평가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방법은 기업의 경영철학과 목표 등은 철저히 무시한 채 단순히 대기업용,중소기업용 식으로 업종만을 가르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다. 특정 업종은 되고 특정 업종은 안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업철학,산업화에 대한 기여,국가사회에의 공헌,글로벌 경쟁력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업철학 없는 무분별한 확장이지,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행해지는 사업 확대가 아니다. 뚜렷한 사업철학을 가진 다수의 국내 대기업은 이미 각 사업부문에서 산업 생태계를 조성 중에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폐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재탕해 대 · 중소기업 간 대립관계를 유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이보다는 상생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과 지원을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 · 중소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생태계 전체의 집단 경쟁력으로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길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대학원장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