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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 칼럼] 투매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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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12월30일 미국 시카고 이로쿼이 극장에서 뮤지컬 '푸른 수염의 사나이'가 공연되고 있을 때다. 무대 옆쪽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방화 커튼은 절반 정도 내려오다 멈춰섰다. 배우들이 불붙은 의상을 입고 도망치자 관객들도 정신없이 비상구를 향해 몰려갔다. 불길은 10여분 만에 잡혔지만 6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포에 휩싸여 서로 먼저 탈출하려 한 탓에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여성과 어린이가 대부분이었다.

    집단 공포의 극단적 표출인 패닉은 가축의 번식을 주관한다는 그리스 신 판(pan)에서 유래했다. 얼굴은 사람이지만 염소의 몸과 다리에 뿔까지 달고 있어 공포심을 준다는 신이다. 그리스인들은 가축들이 놀라 날뛰는 것을 판의 장난으로 여겼다. 주로 본능에 의존하는 가축을 공포심과 연결한 것이 그럴 듯하다. 사람이 가축보다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집단 공포 속에선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 주식 투매에도 비슷한 심리가 작동한다.

    1987년 10월19일 월요일 뉴욕 증시의 문이 열리자마자 팔자 주문이 쏟아졌다. 월가는 패닉에 빠지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앞다퉈 주식을 처분하려는 투자자들로 매매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는 22.6%나 폭락했다. 뉴욕발 충격은 런던 도쿄 싱가포르 홍콩 증시로 확산되면서 1조7000억달러가 날아갔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이 같은 현상을 프로스펙트 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이익보다는 손해에 민감한 '손실 회피 경향'을 지녔다는 게 근거다. 실험을 해보니 150만원을 딸 확률이 50%,100만원을 잃을 확률이 50%일 경우 대부분 돈을 걸지 않았다. 적어도 기대 이익이 손실의 두 배는 돼야 내기를 받아들였다. 손해 보는 액수를 이익액보다 두 배 이상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각국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다. 투매가 이어지면서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경제 기반이 우리만 못한 나라들에 비해서도 진폭이 훨씬 크다. 객관적 논리보다는 군중심리에 휩쓸리며 부화뇌동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탓일까. 근거 없는 광우병 파문으로 나라가 휘청댔던 것과 비슷하다. 공포가 짓누를 때일수록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가축들과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할 게 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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