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 '약국판매 갈등' 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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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일반약 전환 또 보류…조정기능 상실
종교계·시민단체 가세…공방 장기화 될 듯
종교계·시민단체 가세…공방 장기화 될 듯
사후(事後) 피임약 '노레보정'의 일반약 전환 여부를 놓고 의 · 약계 간 공방이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혼선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8일 제5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노레보정'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또다시 보류시켰다. 제4차 회의에 이어 두 번째다. 6월 제2차 약심에 처음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보건복지부의 반대(3차 회의),판정 보류(4 · 5차 회의) 등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식약청은 약심 소위에서 "현재의 소분과위원회에서는 의 · 약계가 평행선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소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조속히 매듭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뒤인 9일 식약청 관계자는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다"며 "의 · 약계 의견을 계속 자문형식으로 청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식약청의 모호한 입장 번복에 이해 당사자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약사회는 "정부 정책의 기준이 없다. 이제 더 이상 결정을 늦추지 말고 사후 응급 피임약을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 즉각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의사협회도 "현재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고 있는 일반 경구(經口) 피임약을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사후 응급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반대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현재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일반 피임약까지 전문 처방약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일부 산부인과 전문의들('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 진오비)은 "응급 피임약을 병원에서 직접 팔 수 있도록 하고,피임 상담 진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응도 뜨겁다. 한국천주교회는 약심이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대해 보류 판정을 내리자 일반약 전환 반대는 물론 사후 피임약 자체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김태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응급 피임약은 성관계 뒤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하는데,이 기간에는 의사들이 임신 여부를 진단할 수 없고 진료해줄 것도 없다"며 "낙태가 불법인 한국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응급 피임약뿐인데,굳이 처방을 받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가까운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명확한 원칙 없이 안건 상정을 미루기만 하면서 갈등 조정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응급 피임약 시장 규모는 연간 60억원 정도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권 국가에서는 응급 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다. 다만 독일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한다.
이준혁/정소람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