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發 금융패닉' 불안심리가 문제
지난 주말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상위 등급인 AAA에서 차상위 등급인 AA+로 낮췄다. 미국 정부가 즉각 등급 강등이 적절치 않은 것이라며 반박하고 나서자 S&P는 자신의 결정을 변호하는 등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의 여러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형국이다.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것이 우리 금융시장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번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미국의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국가 부채한도를 제때 증액시키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P 역시 등급결정의 이유로 이 정치적 배경을 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부채한도 증액문제가 생긴 것은 그동안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누적됐고 특히 얼마 전 글로벌 금융위기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했던 것과도 연관돼 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해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타협이 지연된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사실은 S&P의 미국 신용등급 결정 이전에 금융시장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S&P의 미국 신용등급 결정은 사실 새로운 뉴스거리는 아니다.

원래 신용등급은 회사가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려고 할 때 그 회사의 수익성을 조사해 채권이 제대로 상환될 수 있을지 확률을 추정하는 것이다. 투자자가 어떤 회사의 채권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그 회사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의사결정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때 공신력 있는 신용평가사가 추정한 신용등급은 투자자들에게 매우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게 되고 투자자는 그 신용등급을 본 뒤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 즉 신용등급은 투자자가 아직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알려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금융시장에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 신용등급은 한 나라의 경제적 · 정치적 상황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그 나라의 국채가 제대로 상환될 수 있는지의 확률을 추정한 것이다. 이 경우에도 국가 신용등급이 금융시장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지려면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에 기초한 경우여야만 하는데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신용등급의 추정에 사용된 모든 사실이 이미 시장에 알려진 경우에도 신용등급의 변화는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이유로 발생한 신용등급 변화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사람들이 불안해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결국 금융시장은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장불안은 시장의 원천적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요 며칠 동안 우리 증권시장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진 후 처음에는 소폭의 조정만 생길 것 같던 주식가격이 점차 하락폭을 확대하며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 이런 모든 가격변동의 원인이라면 미국의 국채 금리가 가장 먼저 큰 폭으로 상승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용등급이 낮아진 채권은 부도 확률이 큰 것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위험도를 금리가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올라야 하는 미국 국채 금리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고 주식 값만 폭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번 주식시장의 혼란이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뉴스를 접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불안 심리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겁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에 급하게 대응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무엇보다 주식을 내다 파는 것은 손실을 확정시키고 시장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할 뿐이다.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면 시장도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고 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인호 < 서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