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8일과 9일 이틀 동안 코스피는 7% 이상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아갔다. 코스피지수 장중 낙폭이 180포인트를 넘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반면 국고채에는 외국인과 국내 투자자들이 몰렸다. 외국인은 8일 1조4039억원,9일 9606억원 등 무려 2조4000억원어치의 국채선물을 사들였다. 국고채 금리는 최근 1주일 사이에 0.3%포인트 하락했다. 외국인들이 주식과 채권 모두 내던지며 환율을 끌어올렸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다른 양상이다. 덕분에 환율은 1090원선 아래를 지켜내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주가만 떨어진다

최근 금융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외국인들의 자산 포트폴리오 변화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 관리관은 "9일 하루 동안 외국인들이 1조2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판 것을 감안하면 외환시장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인 채권으로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포트폴리오 변화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채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서 자산 간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실장은 "한국 채권 수요가 괜찮은 것은 선진국 채권에 비해 금리가 좋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과 외화 유동성에 대한 믿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단기적으론 원화 약세 요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강세로 가지 않겠느냐는 시장 참가자들의 판단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 상승도 제한적

외국인들의 국채 순매수 움직임은 환율 폭등을 제어하는 효과로 이어지면서 외환당국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2008년 9월14일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진 뒤 3주 만인 10월8일 주가와 환율이 역전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최악의 유동성 위기로 사태가 전개된 것에 비하면 적어도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의 움직임은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과거 주가 하락에 비해 채권 · 외환시장의 변동이 크지 않다는 게 다른 점"이라며 "외국인이 국채 현물과 3년 선물에 대한 매수세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 펀더멘털의 충격 흡수능력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 외국계 은행의 외환딜러는 "어차피 주식시장은 정부가 손 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외환시장은 정부가 개입할 수 있고,또 개입해야 하는 시장이지만 주가 폭락이 글로벌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결국 외국인들도 주식 판매대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사태를 낙관하기에 이르다는 것이다.

◆사태 본질은 심리적 공황?

현재로서는 이번 금융시장의 혼란이 2008년 상황과 다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당시에는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금융회사들의 과다차입 문제가 유동성 위기를 불러일으키면서 금융시스템의 마비로 나타났지만 지금은 심리적 패닉의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한 외국계 은행 대표는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문제이며,금융에 미치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며 "이번 사태에 부화뇌동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변동성이 강한 주식시장만 타격을 받고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도 "2008년 당시에는 예대율이 140% 정도로 올라갈 만큼 시중 은행들이 무리해서 대출한 결과 금융시스템 전반의 붕괴로 나타났지만 이후 금융시스템을 잘 정비해 대비 태세를 갖췄다"며 "한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반응이 워낙 빨라서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며 "리먼과 같은 돌발사태가 생길 일이 없기 때문에 빨리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심기/박신영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