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땐 매도설계 ELS 20兆도 복병…금융위까지 나서 "팔지 마라" 호소
미국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 여파와 경제의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9일 코스피지수는 68.10포인트(3.64%) 하락한 1801.35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는 이날 한때 장중 낙폭으로는 사상 최대인 184.77포인트(9.88%)까지 빠져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매도호가 효력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일 이후 6거래일 연속으로 매일 2% 넘게 하락했다. 코스피가 6거래일 연속 매일 2% 이상 하락한 건 사상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심리적인 공포가 투매로 이어진 게 급락의 근본 원인이지만,시장환경이 증시변동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도 이유"라고 지적했다.
◆"손절매할 기회가 안 온다"
이번 조정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와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시장이 반등 없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가 지난 6거래일 연속 하락하는 동안 전문가들은 "낙폭과대로 인한 반등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손절매하더라도 이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언급을 수시로 해왔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투자자들이 기다렸던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2008년 당시 코스피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9월14일)을 하고 난 다음 첫 거래일인 9월16일에 6.10%가 빠졌지만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9월 말에는 1400선을 유지했다. 본격적인 조정에 들어간 10월 한 달 동안에도 1~4거래일에 한 번씩은 0.5~12% 반등하며,투자자들에게 매도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난 2일부터 시작된 이번 급락장에서는 이 같은 반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등 없는 추락의 원인은?
이번 급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 더블딥에 대한 불안감이 '공포' 수준으로 커지면서 투매가 일어났다는 게 가장 먼저 꼽힌다. 여기에 증시가 급락할 경우 시장참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도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시장구조가 변화된 것도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시가 하락할 경우 자동적으로 매도하도록 한 기관들의 로스컷(손절매) 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원회가 이날 개별 금융회사의 규정을 완화하도록 창구 지도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중은행 등 일부 기관의 경우 보유종목의 주가가 시초가 대비 10% 수준 하락하면,무조건 팔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수금으로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반대매매가 크게 늘어난 것도 낙폭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8일 개인이 7000억원 이상을 순매도하며 증시 하락폭을 키운 데는 미수금이나 스탁론(저축은행 등의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외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에 대해 반대매매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서울 마포 지역에서 영업 중인 한 증권사 지점 관계자는 "반대매매 대상인 계좌를 보유한 투자자들의 현황을 매일 뽑아보고 있는데,하루 평균 기준으로 지난달 말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반기 20조원 가까이 발행된 주가연계증권(ELS)은 앞으로 시장변동성을 키울 '복병'으로 꼽힌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개별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경우 손실이 확정되는 구간에 들어가게 될 경우 기초자산을 매도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아직 이런 사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시장이 더 하락하면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반등은 온다
이날 코스피는 기관이 9112억원을 순매수하며 '구원투수'로 나온 덕에 1800선을 회복하며 장을 마감했다. 낙폭 과대에 대한 우려로 아시아 증시도 오후 들어 낙폭을 상당 부분 만회하면서 장을 마쳤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곧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 반대매매
투자자들이 미수나 신용거래를 통해 주식을 매입했다가 현금이나 담보가 부족해질 때 보유주식을 증권회사에서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증권사는 사유가 발생했을 때 통상 증시 시초가에 하한가로 반대매매 주문을 낸다.
◆ ELS
equity-linked securities.주가연계증권이라고 한다. 특정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등락에 수익률이 연동되는 유가증권을 말한다. 은행 정기예금이나 채권보다 위험도가 높지만 주식보다는 낮은 게 일반적이다.
◆ 스탁론
저축은행이 투자자들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저축은행은 고객의 증권계좌를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은 증권사를 매개로 해 투자자들에게 스톡론을 제공한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