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일요일 아침마다 자녀들과 함께 산책할 것,튀지 않게 행동할 것,할아버지가 손자의 스승이 되어 지혜를 전할 것.'

스웨덴 최대의 기업군을 이끌고 있으며 가족경영으로 유명한 발렌베리가(家)의 10대 교육지침 중 일부다. 일렉트로룩스 등 발렌베리 가문이 갖고 있는 회사는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을 책임진다. 그러나 스웨덴 내에는 '반(反) 발렌베리' 정서는 없다. 그 배경에는 이 같은 지침에 기초한 철저한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경영권을 상속하는 유럽형 '가족 경영기업'이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과정에서 교육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덴마크 최대 기업인 댄포스도 마찬가지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댄포스의 '클라우젠 가문'도 경영권을 상속하는 가족기업이면서 덴마크인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힌다. 1933년 설립된 에너지효율기기 생산업체 댄포스의 직원 수는 2만5000여명.2007년에는 블룸버그통신이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1000대 기업 중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댄포스의 요르겐 클라우젠 회장(62)은 "(경영권을 승계하는) 가족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교육과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댄포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댄포스의 성장비결 등을 들어봤다.

▼유럽에는 가족경영 기업이 많은데 성공적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유럽에서도 가족기업은 3대가 넘어가면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앞서 기업을 이끌어왔던 경영자들의 철학과 이를 이어받은 다음 세대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후대로 갈수록 노력해서 얻으려 하지 않고,쉽게 사업을 하려는 것도 가족 경영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댄포스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핵심은 교육입니다. 신 · 구세대간 견해를 좁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댄포스는 교육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먹구구식 교육이 아닙니다. 아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가족기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가족기업 구성원들이 성공과 실패사례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또 객관적이며 지명도 높은 교육기관이 제시하는 솔루션을 통해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도 줄일 수 있습니다. "

▼한국에는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데.

"한국의 가족기업들도 경영윤리를 체계적으로 교육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대학 등 교육시설에서 교육을 받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을 것입니다. 덴마크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가족교육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런 공식적 교육은 앞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가족기업 형태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가족기업도 내분(family fight)을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 교육을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

▼최근 노키아 등 북유럽 글로벌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의 몰락을 보면서 최근 덴마크내에서도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경쟁력 있는 지식산업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임금수준은 높지만 교육수준은 낮은 편이이서 그런 걱정이 기우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덴마크에서 저임금 일자리는 슬로바키아 노동자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교육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덴마크의 지식산업도 한국과 같은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뺏길지 모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말하는 겁니까.

"과학기술 교육입니다.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된 지금은 과학기술 교육이 기업과 국가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요건입니다. 이를 통해 경쟁력있는 인재를 길러내지 않으면 낙오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도 젊은이들 사이에 이공계 기피현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덴마크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걱정입니다. "

▼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2005년부터 과학체험 공원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원은 일부 영재들만 재미를 느끼는 곳이 아닌 일반 학생들도 다양한 체험을 할수 있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과학공원 건립 사업을 일선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관광산업과도 연계할 계획입니다. "

▼댄포스는 에너지 효율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악조건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기회를 본 것입니다. 사회가 필요한 것을 제공함으로써 사업을 확대한 것입니다. 그 악조건은 북유럽의 추운 날씨입니다. 댄포스는 난방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 착안해 초기부터 열효율 분야 연구개발에 집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열병합 발전 기술'에 주력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화력발전소를 덴마크에 건설해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및 열을 활용해 각 가정에 난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짜 연료인 셈이죠.이 기술은 현재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난방시설에 쓰이고 있습니다. 지역난방을 하는 도시들은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40% 적습니다. 또 이산화탄소 등 화력발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어 친환경적입니다. 한국의 겨울이나 러시아,중국의 기후에도 우리의 기술이 활용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기업들과도 협력하고 있는지요.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이 덴마크를 방문해 세계 최초로 양국간 '녹색성장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때 댄포스도 삼성물산과 협업관계를 맺었습니다. 건축 부분의 에너지 효율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거죠.앞으로 몇차례 회의를 거치면 구체적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다른 한국 기업과의 협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SK,포스코,두산중공업 등과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구체적 성과는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접촉할 계획입니다. 댄포스가 상대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약한 한국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정보의 교환은 생각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유익하다고 봅니다. "

▼향후 녹색산업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 문제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됐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측면에서 볼 때 저탄소 녹색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댄포스도 현재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 에너지와 관련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발전시설 자체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기술인 윈드터빈용 인버터나 태양광 히트펌프 컨버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덴마크의 파도발전 업체인 웨이브스타에너지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