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소한 2013년 중반까지 제로(0%)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10일 발표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회의 때마다 금리 변경 여부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중앙은행이 '향후 2년간'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을 명시해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경제가 그만큼 나쁘고,쓸 수 있는 다른 정책 수단도 없다는 '실토'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가 불안을 걱정해온 한국은 미국의 이 같은 결정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4%를 넘었다. 물가를 잡으려면 정책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제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연 3.25%인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진다. 내외 금리차를 노리는 외국 자본이 물밀듯 밀려들어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반영돼 원 · 달러 환율이 8원10전 내린 1080원에 마감됐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이 낮아지고 기업의 수익도 줄어든다. 미국이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에 빠지고 환율마저 떨어지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이 최소 2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한다는 사실은 심리적 공황에 빠진 금융시장에는 일시적으로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내외 금리차와 경기 여건을 감안하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도 다시 커지고 있다. 박기홍 외환은행경제연구팀 연구위원은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선진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각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전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일본 등이 글로벌 환율전쟁에 뛰어들 경우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보호무역 경쟁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주용석/박신영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