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했던 점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

해외에 머무르다 52일 만에 귀국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0일 작업복 차림으로 깊이 머리를 숙였다. 약 25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복잡한 심중을 반영하듯 '대한민국 1호 조선소' 주인인 그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굳은 얼굴로 '정리해고 원칙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희망퇴직자들을 3년 이내에 재고용하겠다"고 약속하는 대목에선 울먹이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50여 일만의 귀국 울먹인 조남호

조 회장이 이날 부산시청 9층 브리핑룸에서 발표한 '대 국민 호소문'의 골자는 '희망퇴직자에 대한 예우'와 '노사 자율 원칙' 두 가지다. 조 회장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한진중공업 가족들을 다시 모셔올 것"이라며 정리해고 대상자 400명 중에서 희망퇴직을 선택한 306명에겐 경영 정상화 후 재고용과 자녀에 대한 총 100억원 규모의 학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노동세력 간 대리전 양상으로 확전된 한진중공업 사태를 제 자리에 돌려놔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 회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외부인들이 개입해 회사 생존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변질됐다"며 "노사 문제는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조 회장은 "인적 구조조정이 기업의 회생을 위한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경영진으로서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적극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협소한 영도 조선소의 한계와 선박 건조 비용의 차이로 선주들이 수빅 조선소를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조 회장은 그러나 "한진중공업이 영도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회사 관계자는 "영도 조선소의 핵심 설계 능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중 · 소형 특수선 제조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청문회 해프닝으로 끝나나

조 회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날 부산지역 야당과 민주노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김호규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노사 갈등의 최대 현안인 정리해고 철회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고,정리해고자들은 지원 대상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개최키로 한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의 '4차 희망버스' 시위도 예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를 통해 이뤄진 합법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17일로 예정됐던 국회의 한진중공업 청문회는 일단 무산됐다. 올 1월부터 영도 조선소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의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리해고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묻겠다며 엄포를 놓았던 국회가 스스로 칼을 거둔 셈이다.

김 지도위원의 청문회 출석은 조 회장과 여권 고위 관계자 사이에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해외 출장 중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여권과 연락을 유지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다가 자신의 청문회 출석 조건으로 김 지도위원의 동반 출석을 내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 문제를 놓고 이틀째 파행을 거듭했다. 여당 간사인 이범관 한나라당 의원이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이 200일 넘게 이어진 데는 김 지도위원의 책임이 크다"며 청문회 출석을 요구하자 야당 간사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김 위원은 교섭권도 없는 사람"이라며 "청문회가 그를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하는 수단으로 열려선 안 된다"고 맞섰다.

박동휘/허란/부산=김태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