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용평가회사인 다궁(大公)은 최근 "미국 국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위기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달 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보다 한발 앞서 미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때문인지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잔뜩 깔려 있었다. 일본 신용평가회사인 R&I도 미국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부채한도 조정 협상 타결 직후에는 "미국의 신용이 건재하다"는 분석 의견을 내며 시장을 안심시키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은 최근 위기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주일에 두세 차례씩 신용 이슈를 진단하는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미국의 신용등급 관련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국내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 낙폭을 기록하며 요동치는 동안에도 시장 위험을 예측하고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 신평사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국내 신평사들은 규모가 작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도 따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뚜렷한 목소리를 낼 여지는 작다. 하지만 과거엔 달랐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한신정평가는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2008년 미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수차례의 분석 보고서를 내며 대외 이슈가 국내외 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차별화된 전문성과 깊이 있는 보고서는 시장 안정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에는 국내 증권사들이 보유한 리먼 관련 자산유동화증권(ABS) 내역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한신정평가는 2008년 피치의 한국 신용등급 전망 하향에 반론을 펼치며 토종 신평사로서의 강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며칠간 국내 증시를 추락하게 만든 것은 공포심리였다. 많은 증권사들이 주가와 펀더멘털(기초체력) 간 괴리에 집중하며 '매수'를 외쳐댔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공포가 엄습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깊이 있고 체계적인 분석을 원했다. 어떤 금융회사보다도 많은 기업 자료와 신용시장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신평사들은 투자자들의 이런 바람을 외면했다. 신평사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뒷북'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더욱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이태호 증권부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