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에 "내년 예산 편성 기조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10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금융시장 위기관리 비상대책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같이 지시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글로벌 재정위기에 따라 내년 예산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려해 예산 편성 기조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새해 예산의 분야별 우선 순위 등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예산 편성 기조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은 총선과 대선 등이 예정돼 있어 정치권으로부터 어느 때보다 무리한 복지예산 증액 요청이 많다"며 "글로벌 재정위기를 계기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복지예산은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번 세계 재정 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을 넘어 물가와 소비,고용 등 실물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위기 의식 때문으로 전해졌다. 휴가 중인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과 경제장관들은 이번 위기를 미국 정치의 리더십 문제에서 비롯된 재정위기와 복지 포퓰리즘에 따른 그리스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글로벌 재정위기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무상 보육,무상 급식,등록금 인하,저축은행 피해 보상 등이 결국 재정 건전성을 해칠 주범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그리스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듯 우리나라 역시 정치권이 포퓰리즘 경쟁만 벌인다면 언제든 곳간이 빌 수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위기의 해법으로 노·사·정 타협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나 기업,근로자,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재정건전성을 지키고,기업들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근로자들은 협력해야 한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결단을 통해 재정건전성과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