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우매한 사회는 시장의 덕 볼 수 없다
'자본주의 4.0'은 영국의 더 타임스,이코노미스트,파이낸셜타임스 등에 금융재정문제 칼럼을 기고해온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가 작년 7월 저술한 책의 이름이다.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작은 정부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1.0판(版)으로 해,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의 케인시안 거대정부 자본주의 2.0 및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의 자유시장 자본주의 3.0으로 진화했음을 설명한다. 2008년의 가공할 금융위기는 정부 시장 모두 큰 실패에 익숙한 속성임을 드러냈고,따라서 제4 변종의 자본주의가 곧 도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소프트웨어에 비유된 자본주의 명칭과 낙관적 미래 예측으로 영국에서 주목을 끌었으나 곧 잊혀졌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의 학계,정치,언론 등에서 자본주의 4.0은 거론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가 이를 발굴해 큰 화두로 삼고 있으니 우선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이 어떤 모습인지부터 소개해 보자.

4.0시대 자본주의는 시장과 정부,경제와 정치의 역할에 상호 균형과 존중이 이뤄지는 체제다. 3.0시대 자유시장 이념은 정부와 기업의 실용주의적 적응으로 대체된다. 선진국 정부는 고용 창조와 부채 관리를 위해 제로 수준으로 이자율을 내릴 것이며,이에 따라 달러 강세와 수출 증대가 실현되고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잠깐 휴식한 뒤 장기 상승 국면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선진국 정부들은 거시경제 운영,부채 관리,보건의료 등에 집중함으로써 교육,연금,기타 정부서비스 기능에서는 점차 철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국가 파산을 막기 위해 의료 비용과 국민의 사회보장 권리를 크게 낮추거나 세금을 극적으로 올려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 기업들은 정부에 협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더 수익적임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 등등.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실용적 자본주의 4.0이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3.0을 갈아치울 '따뜻한 자본주의'로 신격화되는 중이다. 최근 한 신문에서 큰 지면으로 자본주의 4.0 특집 시리즈를 연재 중이고,교수 국회의원 논설위원들이 매일 4.0시대 찬양과 훈시(訓示)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과거 3.0시대는 기업의 탐욕적 승자 독식으로 양극화,청년실업,중소기업 파탄,비정규직과 서민의 눈물을 생산했다,그러니 기업은 이제 반성하고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따뜻한 자본주의 4.0시대를 만드는 데 앞장서라'는 식이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 유례없는 공정사회 선풍이 일어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 이상 팔렸다. 센델 교수의 책은 이 세상에 정의의 개념과 목적이 다양함을 강의한 것이었지만 한국사회의 공정은 이미 시장은 악(惡),이를 수정하는 나눔 동반 상생은 선(善)이라는 심판을 내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모든 담론은 다 이런 식으로 '시장,기업 때리기'의 길로 통하는 모습이다.

한국에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행세하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의 안목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는 그 사회적 결과부터 우려해야 한다. 시장과 기업이 이렇게 혐오되는 땅에서는 결국 시장과 기업이 고사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쇠퇴하면 시장이 편애하던 정직,성실,능력,책임 등의 덕목도 이 사회에서 쇠퇴한다. 기업의 도태는 기업이 만들던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정치가들이 요리하던 거대한 국가재정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리된다면 따뜻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줄 돈은 어디에서 찾나.

3.0 신자유주의 자본시대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됐다. 이런 나라가 바른 눈으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공(功)과 과(過)를 살피지 못하고 스스로 걷어차는 것은 국민이 그 정도 복밖에 타고나지 못한 때문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